박선영 - Calli & Graphy

손글씨 서체 개발과 조합형 캘리그래피 서체의 대두에 관하여

2012.05.17
0 14
최근 글자꼴의 경향은 디지털 환경이 생산하는 딱딱하고 기계적인 느낌에서 손맛 또는 인간미가 느껴지는 부드럽고 감성적인 느낌을 선호하는 것으로 바뀌는 듯 하다. 옛 목판체 등을 되살린 옛멋글씨, 서예가들의 글씨를 활자화한 필 시리즈 등은 물론이거니와 여태명, 정병례, 신영복, 강병인, 백종열 등 유명 작가의 글씨를 서체화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 되었다.


1.png   
 

손글씨 서체개발

꼭 누구의 글씨체라 이름 붙이지 않아도 서체개발에서 손글씨는 예전부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왔다. 기업전용서체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의 명조형과 고딕형 서체개발 외에 캘리그래피(손글씨)를 적용한 CJ의 ‘CJ손맛체’, 롯데마트의 ‘다용도 캘리체’ 등이  그것이다. 이들 서체는 삼성생명 ‘SLI파트너H1’이나 네이버 ‘나눔손글씨’와 비교했을 때 용도가 더욱 구체적인데, 식품회사의 특성을 살려 식품 패키지와 그 주변에 사용할 수 있게 디자인되었다.

2.png      
▲ CJ패키지 전용서체(CJ손맛체) / 롯데마트 통큰서체(다용도 캘리체) / 삼성생명(SLI파트너H1, SLI파트너H2) / 네이버 나눔체(나눔손글씨)


기존 작가의 글씨를 서체로 만드는 것은 일정 부분 규칙성을 담보로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탈 네모꼴 구조로 만들고 리듬감을 넣어도, 문장이 길어지면 일률적으로 보일 여지가 크다. 이를 탈피하고자 제한적으로나마 글자 모양을 선택할 수 있는 약간의 옵션 기능을 넣어 손글씨의 느낌을 더욱 살리고, 풍부한 표현을 가능케 했다. 


3.png
                                      ▲ 봄날체 피쳐링(Featuring) 옵션                                   ▲ CJ손맛체 글립(Glyph)기능 중 세 가지 버전
                                                                                                                       (Basic, Glyph Style 1, Glyph Style 2)

봄날체, 백종열체, CJ손맛체 등이 그 예인데, 봄날체의 경우 피쳐링(Featuring) 옵션을 넣어 조사나 어미에 주로 사용되는 빈도수가 높은 글자(64자)를 선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변화를 꾀했다. CJ손맛체의 경우는 글립(Glyph) 기능으로 패키지디자인에 필요한 단어(108자)를 2종의 다른 스타일로 개발해 3종의 효과를 누릴 수 있도록 했다. 모두 서체의 일률적인 모습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였지만 제한된 단어 때문에 선택적으로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조합형 캘리그래피 서체의 대두


4.png  

그에 반해 자유로운 캘리그래피와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식이 있다. 서체가 아닌 벡터파일(illustrator 8.0) 이미지를 조합해 사용하는 방식인 조합형 캘리그래피 서체가 그것이다. 조합형 캘리그래피 서체는 일러스트 파일화된 자소를 분리해 사용하기 때문에 크기와 기울기 변화가 자유롭다. 한 자소당 30개 정도씩 주어지는 샘플들은 실로 다양한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디자이너의 역량에 따라 결과물은 천차만별이다.

이 서체의 등장으로 디자이너는 리듬감, 붓의 동선, 공간배열 등 캘리그래피와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이해가 더욱더 필요하게 되었다. 물론 조합형 캘리그래피 서체의 종류에 따라 다르겠지만, 캘리그래피 사용과 구성의 질적 차이는 디자이너의 손에 상당 부분 넘어갔다고 볼 수 있다. 


5.png
                 ▲  조합형 캘리그래피 서체(캘리스토어 맛글체)의                                                  ▲ 자모음 크기변화 적용 
                                      다양한 자모음 조합 예시


몇몇 회사에서 출시한 조합형 캘리그래피 서체는 디자이너에게 손쉬운 캘리그래피 소스를 공급할 뿐 아니라 어느 정도 쓸만한, 일정수준 이상의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지금처럼 캘리그래피 시장이 혼탁해지고, 좋고 나쁨의 구분이 뒤섞여 있는 상황에서 안정적인 소스의 공급은 최악을 피해 가는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만고만한 조합형 캘리그래피의 사용은 장기적인 안목으로 보면 외부 의뢰 감소를 불러오고, 결국 다양한 캘리그래퍼의 출현을 막아 독이 될 가능성도 있다. 물론 조합형 캘리그래피를 만든 캘리그래퍼에게는 새로운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합형 캘리그래피 서체의 사용으로 캘리그래피의 저변이 확대되어 캘리그래피 작업은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경쟁력 있는 캘리그래퍼는 오히려 줄어드는 기현상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조합형 캘리그래피 서체 공급사에서는 사용자 등록 절차를 통해 서체가 무분별하게 복사되는 것을 막고 있다. 하지만 수십, 수백 개의 획을 가진 캘리그래피 서체의 특성상, 매일 쏟아져 나오는 캘리그래피 작업의 홍수 속에서 무단사용과 복사를 과연 선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우리는 붓으로 글씨를 쓰면 지나치게 경외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풍토에서 조합형 캘리그래피는 붓으로 쓰면 다 좋아하는 낮은 수준의 기대를 충족시키는데 꽤 괜찮은 방법이다. 그러나 조합형 캘리그래피 서체의 경우 작가들의 자유로운 캘리그래피와 비교했을 때 희소성이나 표현의 적합성이 어느 정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 하여도 지역의 간판이나 농산물 브랜드 등에서는 저렴한 제작 비용으로 효율적인 효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기능적인 가독성과 붓질의 형태를 넘어 감동을 주는 글씨가 나올는지 모르겠다.

상용 일러스트나 포토 시디가 있다고 해서 일러스트레이터나 포토그래퍼에게 일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글씨는 특성상 따라 쓰기 쉽고, 시장이 좁아 어느 정도 영향과 위기가 있을 수 있다. 또한 캘리그래퍼들 역시 서체와 경쟁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만의 색을 찾아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이미 있는 작은 파이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캘리그래피가 생활 속의 문화로 안착될 수 있도록 한 단계 도약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하다. 좀 더 다양한 캘리그래피를 볼 수 있도록 다양성이 살아 있는 시장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글, 그리고 캘리그래피의 인기와 더불어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단지 한글을 디자인 요소로 차용했다고 해서 우리의 전통 미학이 살아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글의 아름다움을 활용했다 하면서도 후줄근하고, 촌스러운 디자인을 수없이 많이 봤다. 한글캘리그래피를 만들고 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부리고 사용하는 사람들의 시각이 높아져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한글 디자인과 캘리그래피, 더 나아가 한글 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더 많은 실험과 다양한 작품에의 적절한 사용이 함께 이뤄져야 할 것이다. 


• 자료 제공 : 릭스코(폰트릭스), 캘리스토어, 산돌, 윤디자인, 초롱테크, 폰트뱅크, 직지소프트, CJ, 롯데마트, 네이버


박선영.jpg
 
0
Comment 14
서비스 선택
댓글
위 아이콘을 눌러 로그인해주세요. SNS 아이디로도 로그인 가능합니다.
profile image
  • 조합형 켈리에 관해 서치하다 우현히 들어와 좋은 말씀 듣고 갑니다. 저음 조합형 켈리를 보고서는 정말 놀랐던 기억이 나네요. 분명 이 조합형 켈리그라피의 탄생으로 디자이너들이 캘리그라피를 쉽게 접근하게 된것은 반가운일이지만 아직도 가끔 보이는 어설픈 조합이 가끔 갸우뚱 하게 됩니다. 켈리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해서부터 글자의 조합을 배우게 되니, 디자이너로서도 한글의 자모조합과 균형미에 대헤 얼마나 모르고 있었는가 항상 고민하게 됩니다. 조합형 켈리의 사용에 관하여 디자이너들이 조금씩만 더 노력한다면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작업물이 많이 생기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그전에 저 본인의 노력이 더 필요할거 같습니다. ㅎㅎㅎ
    2013.01.18
  • 윤디자인에 붓글씨폰트를 만들자고 조르고 졸라서 필폰트를 만들었었는데 세상이 많이 변천하였음을 느낍니다. 필묵에서 처음 김종건사장과 회사를 만들어서 움직일때 목적은 디자인시장에 서예를 알리고 싶어서 였습니다. 서예계는 병들고 새로운 물의 공급이 없었고 자구책도 구하지 않았었죠. 캘리그라피 교육도 만들면서 대중화와 일반화를 해놓으면 파이가 커지며 차츰 서예적 감성이 발달되어훗날 언제 쯤인가는 안목의 성장이 이루어져서 격조높은 글씨가 꼭 필요할 때가 올것을 믿었습니다. 요즘 조합해서 사용하는 업태를 보며 저도 이것을 해야하나 망설이고 있습니다. 과연 그 과정에 도움이되면서 저도 발전을 할 수 있을지... 아뭏든 중요한 시점에 다다른 것 같고 저도 속도를 내어 좋은 폰트를 개발해야하지않나 조급해지는 요즈음입니다. 글 감사히 읽고 갑니다. 최근 제가 제 글씨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습니다. 블로그에 한 번 들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지산 신승원 올림. http://blog.naver.com/eerf8
    2013.01.08
  • profile image
    처음 나눔손글씨를 보았을때 굉장히 반가웠고, 아주 많이(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사용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날, 저 외에도 너무나 많은 디자이너들이 나눔손글씨를 남발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고, 왠지 그 다음부터는 꺼려지더라구요. (나눔손글씨가 조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건 절대 아닙니다^^단지 예를 든 것 뿐...) 음....조합형 캘리그라피는 분명 어느 디자이너들에게는 정말 혁신적인 도구가 될 것입니다. 모든 디자이너가 일러스트레이션과 포토그라피, 캘리그라피를 소화할 순 없는 현실에서 어느정도 수고를 덜어준 셈이니까요. ( 영세한 디자인회사일수록 디자이너 한사람에게 너무 많은 능력을 요구하곤 합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소화할 수 있는 수퍼디자이너..랄까요..ㅠㅠ)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제가 나눔손글씨에 대해 느꼈던 마음처럼, 조합형 캘리그라피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에서 되돌아보는 디자이너들이 많아지리라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다시 본문에서 말씀하신 '감동을 주는 글씨'를 찾는 노력을 하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캘리그라피 시장이 점차 안정적인 구조가 되지않을까..희망적인 미래를 기대해봅니다.^^
    2012.05.20
  • 아! 하는 한숨과, 우려의 시간이 지나고, 그냥 가던길 계속 걸어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언제나 좋은 내용 감사합니다.
    2012.05.20
  • 처음에 조합형 캘리그라피를 파는 것을 봤을때, 이제는 하다하다 별게 다 나왔구나... 싶었습니다. 춘추전국시대라고 불러도 될 캘리그라피 시장에 충분히 있을 수 있고 예상했던 일이 벌어진것이겠죠. 디자이너들에게 알아서 맘대로 주물러서 쓰세요.. 라는 것은 어찌보면 굉장히 무책임한 일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생각하면, 부담스러운 금액을 지불하고 캘리그라피 작가에게 글씨를 의뢰하기 힘든 영세업체들에게는 어느정도 비스무리한 느낌의 글씨를 사용할 수 있게끔 해주는 해결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조합형 캘리그라피라고 부르는 것은 맞지 않다고 봅니다. 붓으로 글씨를 썼다고 다 캘리그라피는 아니듯, 이것은 붓느낌의 커스텀 폰트 소스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이러한 여러 현상들을 볼 때마다 개인이든, 단체든, 협회든.. 뭔가 좀 교통정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붓느낌=캘리그라피'는 아니지 말입니다람쥐~
    2012.05.19
  • 시장논리로, 시장논리에 맞게 접어들었다 혹은 가속화 되었다란 표현이 맞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특히 조합형 캘리그라피 폰트개발로 아무런 검증없이 무분별하게 난발하고 있는 캘리그라퍼(?)라
    주장하는 사람들도 시장논리에 의해 정리되지 않을까 혹은 잠잠해지지 않을까 합니다.
    또한 커미션시장에서는 디자인 논리가 앞서는 수준높은 캘리그라피가 자리잡지 않을까요 물론
    저급한 캘리그리파 시장이 존재하겠지만(과감, 과격하게 표현하여) 생존을 위해 새로운 상품화 시장으로의 개발과 여러 시도, 노력이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순기능 방향으로 향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2012.05.18
  • 조합형 캘리그라피.... 예전에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씁쓸하긴 해도 난무하는 저질 캘리그라피보다는 퀄리티 100배는 좋아보이더라구요??? ㅋㅋ 디자이너에게 역량여부에 따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게 되었다는 점은 장단점이야 있겠지만, 캘리그라피가 과도하게 수평적으로만 확산되어 수준이 하향평준화되고 기형적으로 변이되는 추세에 묘하게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다는 반전을 조심스레 기대해보게도 되네요~~~ 어차피 '싸구려 감동'은 얼마 지나지 않아 흔적도 없이 종말을 맞이하기 마련입니다.
    2012.05.17

Send to a Friend

이 컨텐츠가 마음에 드시나요?
친구에게 추천해보세요.

이메일 보내기

Related Contents

다음글 캘리그래피? 캘리그래피디자인?
손글씨? 손멋글씨?
캘리그래피? 캘리그래피디자인? <br/>손글씨? 손멋글씨?

M Send to a Friend

기사 내용 메일 본문에 기사 내용이 첨부됩니다.

TYPOGRAPHY SEOUL

  • ID
  • PASS

M Newsletter sign-up

이메일 주소를 입력해 주시면,
타이포그래피 서울의 뉴스레터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