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영 - Calli & Graphy

캘리그래피? 캘리그래피디자인? 손글씨? 손멋글씨?

201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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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별다른 의심 없이 써왔던 ‘캘리그래피(Calligraphy)’라는 용어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캘리그래피에 대한 개념은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조금의 차이가 있으나 일반적으로 인간이 사회를 이룩한 이래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고안된 형상을 손으로 쓰는 행위를 지칭하며, 문자를 가진 모든 문명권에서 공통된 예술로서 존재한다. 


최근 한국의 디자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캘리그래피적 표현의 양상은 이성적이고 기하학적인 기능주의 디자인과는 그 표현이나 접근방식이 다르며, 우리의 미적 정서와 일정 부분 합치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우리의 멋과 미가 자연과의 조화라고 생각해 볼 때 캘리그래피의 자연스러운 표현과 일맥상통해 있으며, 기계적이고 기하학적인 서양의 모더니즘과 달리 친근하고 부드럽다는 점과 어딘지 불규칙한 형태를 취한다는 데에 그 매력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일반대중에게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친근감을 준다.
디자인표현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한국적 디자인을 창출해 내기 위한 한 분야로서 캘리그래피적 표현은 좋은 시도가 될 만하다. 캘리그래피적 표현은 영화타이틀, 광고, 북디자인, 패키지, 아이덴티티디자인, 서체, 간판 등 우리의 생활과 문화 일반에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국내 디자인에 나타나는 캘리그래피적인 손글씨의 개념과 범주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손글씨라고 하면 손으로 쓰는 필기체를 떠올리거나 붓글씨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 개념을 엄밀하게 구분해서 사용하지 않고 있다. 개념을 좀 더 명확히 정리하자면 ‘컴퓨터에서 개발한 일반 서체에 상대되는 개념으로서 손으로 직접 만들고 디자인한 모든 형태의 글씨’를 포함한다. 덧붙여서 현존하는 글꼴을 만지고, 다듬어서 새로운 인상을 나타내는 방식까지도 포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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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느낌의 손글씨 표현들



캘리그래피적인 표현의 우리식 용어 정립이 필요한가?


한글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확장성에 기여한다는 캘리그래피적인 작업들이 우리식의 용어 없이 비슷한 단어를 무비판적으로 쓰는 것이 과연 적정한 것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한글에만 적용되는 사안도 아닌데 과연 한국적인 용어로 바꾸어 불러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생긴다. ‘디자인’을 ‘멋짓’으로 바꾸기는 어렵듯이 캘리그래피도 어떤 특정한 단어로 바꾸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다만 이런 논의를 통해 점점 확대되는 캘리그래피의 외연에 대한 경계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며, 캘리그래피가 유행을 넘어 스스로의 자리매김을 모색하는 상황에서 한 번쯤은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캘리그래피라는 서양식 용어를 빌려 오기 전에 디자인 전반에 나타나고 있는 캘리그래피적인 표현을 우리나라 중심에서 우리의 시각 문화로 논의하고 용어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다 하겠다.

문자 조형상에 있어서 자주적 의도를 가진 한글이기에 오늘날 디자인에서 나타나는 캘리그래피란 용어를 우리식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것이 적당할지 독자들의 의견을 구한다. 현재 ‘캘리그래피’, ‘캘리그래피디자인’, ‘캘리디자인’, ‘손글씨’ 등으로 제각각 부르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현상을 이론적으로 규정해 제대로 표현한 용어는 아직 없다. 손으로 써서 멋을 부렸다는 의미에서 작고하신 김진평 교수는 ‘손멋글씨’라고 부르기도 했고, 월간 디자인넷이 2003년에 주최한 좌담회에서는 한글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새로운 경향을 ‘솜씨체’라 제안한 바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솜씨체’란 손으로 직접 쓴 글씨체이면서 글자에 표정을 부여하고 목소리를 끌어내는 등 감성적인 측면을 강조하며, 기계적인 것의 상대적인 개념까지 내포하고 있다. 그 외의 의견으로는 ‘손글씨’, ‘멋짓글씨’, ‘감성글씨’, ‘마음글씨’, ‘표정체’, ‘상업서예’, ‘상업손글씨’ 등등이 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상업서도’, ‘디자인서도’ 등으로 불리고 있다.

서양의 경우는 간단하고도 명확하다. ‘캘리그래피(Calligraphy)’가 그것이다. 이는 ‘kallos(beauty)+graphy’가 합쳐진 용어로서 아름다운 필적(筆跡), 달필(達筆), 능서(能書, Beautiful handwriting, Finepenmanship)를 의미한다. 우리말로 다시 해석하면 서법(書法)이나 서예(書藝)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캘리그래피를 곧 서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이를 위한 영어 표현은 펜맨쉽(Penmanship)이라고 따로 있다. 또한, 서양에서 손으로 쓴 글씨체는 장식적 흘림체인 캘리그래피나 스크립트(script) 이외에도 거칠게 휘갈겨 쓴 Scrawl, 긁어내고 끌로 파낸 것 같은 Scratch, 장식적이고 디지털타입을 손으로 모사한 Simulate, 글자에 입체감과 생명감을 넣어주는 Shadow글씨체 등 다양한 기법에 따라 세분화해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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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픽테토스의 경구에 따라 그리스어로 쓴 클로드 메디아빌라의 캘리그래피 작품(프랑스) / 피터 길더달의 캘리그래피 작품(뉴질랜드)

 먹의 번짐과 공간미가 돋보이는 중국의 현대서예 작품



전통서예와 상업서예의 차이, 캘리그래피 디자인은 무엇인가?


서예는 글자를 감상의 대상으로 보는 예술의 한 장르를 일컫는 말이다. 본래 서예의 역사는 한자를 대상으로 하던 시대부터 시작되었고, 그 당시 글 쓰는 도구가 붓이었으므로 붓글씨라고 별칭을 가지게 되었다. 한자는 기본적으로 상형문자의 원형을 그대로 지녀왔고 붓과 먹, 종이를 통해서 나타나는 글씨는 그 자체가 조형적인 요소를 함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자문화권에서는 일찍이 한자를 예술적 감상의 대상으로 삼아왔던 것이다.

우리의 고유 문자인 한글이 탄생한 것은 15세기에 들어서이고, 당시로는 그것이 심미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에 서예 하면 먼저 한자를 떠올리게 되고 붓글씨를 대표적으로 인식하는 것도 당연하다. 분명한 것은 현재 디자인 현장에서 활발하게 작업 되고 있는 글씨들은 서예나 붓글씨의 개념과 범주와는 엄연히 다르게 구분되어야 한다. 캘리그래피디자인은 단지 글자를 쓰는 그 자체를 일컫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디자인 의도에 따라 콘셉트에 맞는 글자를 얻기 위해 다양한 필기구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캘리그래피디자인을 붓글씨 또는 서예의 개념으로 인식하면 범주와 미학적 측면에서 오류를 범하게 된다.

전통서예와 상업서예의 차이는 예술성이나 조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목적에 있다 하겠다. 순수서예도 상업적인 목적에 의해 변형되거나 응용되어 쓰였다면 상업서예로 불리기도 한다. 다만 상업서예는 가독성에 더 방점을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의 캘리그래피 디자인은 서예가 아닌 손글씨와 활자 이외의 글씨 작업을 포함하게 되어 더 범위가 넓어졌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캘리그래피적인 표현의 손글씨들을 캘리그래피로 뭉뚱그려 부르다보니 서예의 영문명을 지칭하게 되어 혼동이 올 수 있다. 그나마 뒤에 디자인을 붙여 캘리그래피 디자인이라고 명명함으로써 혼동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실생활에서는 캘리그래피 혹은 캘리로 줄여 부르기 때문에 전통 서예의 영문명과 구분되지 않는다. 또한 세부적으로는 디지털 활자 이전에 수작업으로 하던 손글씨 작업과도 구분해야 한다. 그 시기에는 글씨를 쓰는 도구 자체가 모두 아날로그 방식이었기 때문에 손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적 차이가 있다. 디지털 시대 이후 새롭게 주목받은 캘리그래피는 활자가 기계의 한계를 넘어 다시 손의 세계로 회복되었고, 그 결과 ‘촉각성’까지 획득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캘리그래피디자인을 영향력 있는 새로운 스타일로 볼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리는 측면도 있다. 그에 대한 견해나 입장보다는 이런 작업이 가능하게 된 정황적 근거를 살피도록 하겠다. 디지털 기술이 우리에게 던져준 중요한 인식의 변화 중 하나는 활자의 이미지성을 파악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활자는 전달의 기능이 가장 중요한 임무였다. 그러므로 활자 한자 한자 낱자가 지닌 조형성이나 미학적인 가능성에 관해서는 관심을 두지 못했다. 그러나 컴퓨터 기술은 활자 낱자에도 이미지성을 부여할 수 있게 해주었다. 전달에만 전념했던 언어 본래의 목적에 대한 새로운 각성이 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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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자를 이미지화한 작업들 - 네빌 브로디;폰트샵 포스터 / 데이비드 카슨;레이건 잡지 표지 



예컨대 연극을 관람하면 배우의 대사 전달만이 극을 관람하는 전부가 아니다. 무대의 조명, 디자인 그리고 관객의 분위기,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어우러져 극적 전달력을 높인다. 이 같은 원리를 언어 전달 방식에서도 도입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이로써 활자에 대한 이미지성을 부여하는 작업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지금 이루어지고 있는 캘리그래피디자인은 바로 이런 활자에 대한 이미지성의 표현이라는 맥락에서도 파악될 수 있다. 글자 하나하나가 지니고 있는 표정과 목소리를 조절하고 만드는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캘리그래피 디자인을 단지 기계 미학에 저항하는 손의 촉각성 회복이라는 대립적인 입장으로 파악할 것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디지털 기술 덕분에 새롭게 인식하게 된 활자의 이미지성에 대한 탐색과 실험의 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디지털 이전의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와 함께 이 둘의 장점을 합쳐 표현의 범위를 더욱 새롭게 확장하려는 움직임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캘리그래피적인 손글씨는 서예에 기반을 두고 출발하긴 했으나 범위를 넓혀 손으로 직접 만들고 디자인한 모든 형태의 글씨를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문자의 시각적인 이미지로서의 역할 확대, 실험적인 타이포그래피의 발달, 기계미학에 저항하는 손의 촉각성 회복, 동양적 감성과 미적 정서에 맞는 표현의 발견이라는 측면에서 배경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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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어 정리에 있어서도 어정쩡한 현 상황을 근본적으로 지적해 주셨네요~~~ 상업적인 곳에 쓰인다는 점으로 굳이 구분한다면 분류가 간단해지지만, 그러한 목적에 따른 분류가 조형적인 입장에서 보면 인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순수작'이라는 것이 어느 분야이든 존재하니까... 캘리그래퍼들의 입장에서는 궁극적으로는 조형적인 측면에서 개념을 정립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겠다로 생각이 기우네요~~ 서예와 한 얼굴이자 다른 표정이어야 한다는 느낌인데, 지금의 전통/현대서예와 캘리그라피의 모호한 경계가 뚱딴지처럼 있는 이유는 아직 캘리그라피는 한급 낮고 좁은 분야로 인식과 수준이 머물러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일본의 '서도'처럼, 캘리그라피라는 애매한 용어도 '서예'로 정리되어 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안에서 '상업서예'든,'아트서예'든 세부적으로 어떻게 분류가 되든지 어색해보이지 않는 느낌이랄까? 서예로의 단순 종속개념이 아닌..... 지금의 범주가 좀 자유롭게 넓어졌으면 하는 이상이여요 ㅋㅋ 그러려면 말씀하셨듯이 지금의 캘리그라피는 시대에 맞게 디자인이라는 그릇에 들어가 있고, 디지털의 작용과 반작용을 모두 안고 있는 특수성이 있는만큼 보다 입체적인 실험과 표현 범주의 확장이 있어야지만 그 영역이 독자적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 같네요~ 또 그래야지만 다양한 예술의 표현형식과도 어우러질 수 있는 차원으로 확장될 것이구요~ 맨날 숙제~ 숙제거리~~~~ ㅎㅎㅎ
    2012.05.18
  • 사견으로써 동의하는 바입니다. 아래 의견과 같이 캘리그라피를 한글 타이포그라피로서의 발전적 확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언제나 그렇치만 어려운 주제를 알찬내용으로 담으셨네요~~~ 유익한 칼럼이였습니다~
    2012.05.18
  • profile image
    칼럼 잘보았습니다~ 저는 사실 굳이 캘리그라피를 한글 이름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캘리그라피라는 단어가 디자인이란 단어처럼 한글단어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의미를 담을 수 있는 좋은 매개체라고 생각하거든요 ^^ 한글로 새로운 단어를 짓는다면 그 단어를 사용할때 전체적인 글의 문맥에 묻혀 의미가 협소해 질 것 같아요..
    손멋글씨나 마음글씨 등등의 이름은 듣기에 좋지만..뭐랄까..감성에 많이 치우치고 있는 느낌이랄까...^^ 단지 제 생각입니다 ㅎㅎㅎ
    2012.05.12
  • 역시나 좋은 내용입니다.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마지막 중국작품. 느낌 정말 좋네요. ^^
    2012.05.10
  • profile image
    항상 좋은 내용의 칼럼 잘 보고 있습니다 ^-^ 이번 칼럼은 특히 마지막 문단이 참 좋네요^^
    2012.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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