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DDBBMM’ 이윤호·김강인2020.08.10



그래픽디자이너 이윤호·김강인은 최근 스튜디오명을 바꿨다. 기존의 ‘김가든’이 이젠 ‘DDBBMM’이 됐다. 두 디자이너는 2013년부터 함께 일해오고 있다. 이윤호는 회사에 다니며 스튜디오 일을 겸했고, 김강인은 커리어 초창기부터 줄곧 스튜디오를 운영해 왔다. 이윤호가 직장 생활을 종료하고 스튜디오 운영에 전적으로 합류한 때부터였던 것 같다. 이윤호·김강인 협업 체제의 정서적 강밀도(intensity)가 변화한 시점은. 한쪽에선 “작업 내외부로 많은 영향을 받았고, [···]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여유도 생겼다”란 말이, 다른 쪽에선 “뭔가를 시도하려고 할 때 ‘좋다, 잘될 것 같다, 실패해도 괜찮으니 해보자’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엄청난 힘”이란 말이 나오는 걸 보면.(각 발화 주체가 누구일지는 인터뷰를 통해 확인해보시길.) 

아닌 게 아니라 스튜디오명에도 D, B, M이 각각 ‘한 쌍’씩 들어가 있다. DDBBMM의 본래 뜻(땅·불·바람·물·마음을 의미한다고 한다)과는 전혀 무관한 해석이지만, DD·BB·MM에선 어쩐지 이윤호·김강인 ‘2인 체제’의 견고한 강밀도가 느껴지기도 한다. 스튜디오 이름을 변경하고 새로운 시작을 준비 중인 두 디자이너를 만났다.

인터뷰 _ 에디터 임재훈
director@typographyseoul.com



개최 예정 전시 〈호랑이는 살아 있다〉(코리아나미술관, 2020.9.7-12.19) 그래픽 아이덴티티


2020년 7월을 기점으로 두 분의 스튜디오명이 바뀌었습니다. 단지 문패만 교체하신 건 아닐 듯합니다. 스튜디오 인스타그램에서 “이름을 ‘DDBBMM’으로 변경하고 다양한 시도를 시작하려고 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봤거든요. 리뉴얼 혹은 리스타트의 매니페스토(manifesto)처럼도 읽혔습니다. 앞으로 DDBBMM 이윤호·김강인이 시작할 ‘다양한 시도’란 어떤 것들일지 궁금합니다. 스튜디오 이름에 어떤 의미가 담겼는지도요.

   김강인
   ‘김가든’은 제가 어머니와 함께 가평에서 운영한 게스트하우스 이름이었습니다. 그걸 스튜디오명으로도 사용해 왔었어요. 지금은 가평이 아닌 서울에 살고 있어서 게스트하우스 자체가 없기도 하고, 윤호 씨가 회사를 나와 스튜디오에 합류한 이후부터는 스튜디오명이 마치 한 사람의 이름인 것처럼 오인되는 상황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고민하다 바꾼 새 이름이 DDBBMM이에요. 문자 그대로 ‘디디비비엠엠’으로 읽으면 됩니다. 뜻은 ‘땅(DD)·불(B), 바람(B)·물(M)·마음(M)’이고요. 만화 〈지구특공대〉에 등장하는 말이긴 한데, 거기서 따온 건 아니에요. 몇 년 전 윤호 씨랑 같이 가드닝 수업을 들었거든요. 그때 선생님이 “식물을 키울 때 땅(흙), 불(햇빛), 바람(통풍), 물(급수와 배수), 마음(정성) 이 다섯가지를 꼭 기억하라”고 하셨어요. 저희 둘 모두에게 인상 깊었던 말인데, 결국 DDBBMM이라는 스튜디오 이름으로 자라났네요. 식물이 가득했던 게스트하우스 ‘김가든’과도 의미가 이어지고, 좀더 넓고 조화로운 태도로 일하고 싶은 지금의 태도와도 잘 맞는 듯합니다.

   이윤호
   인스타그램에 ‘다양한 시도’라 적은 것은 강력한 자기 암시이기도 해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저희는 스튜디오의 방향과 디자이너로서의 방향을 오랫동안 고민해 왔어요.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은 넘쳐나는데 우리가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현실적 이유도 있었습니다. 둘 다 애초에 커미션 작업을 평생 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끊임없이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우리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지, 어떤 작업을 할 때 가장 행복할지, ··· 이런 것들에 대해 얘기만 해오다가 올해부터는 ‘일단 시도’해보기로 한 거예요. 

   남의 일을 해주는 것에서 서서히 벗어나 우리만의 자체 콘텐츠를 생산한다, 라는 방향성이라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책으로 구현될 수도 있고, 영상이나 기계 혹은 공간으로도 구현될 수 있습니다. 아마 내년 여름쯤에는 구체적인 모습이 나올 것 같아요.





2019년 ‘성북어린이미술관 꿈자람’ 아이덴티티 디자인
*미술관 내부(입구 사이니지) 사진 출처: ‘성북어린이미술관 꿈자람’



‘성북어린이미술관 꿈자람’ 개관 전시 〈DADA Factory〉 포스터 및 도록
*도록 디자인 어시스턴트: 윤충근

‘성북어린이미술관 꿈자람’ 작업을 보면서 ‘글자의 역할’에 대해 새삼 생각했습니다. 레터링이 특히 인상적이었거든요. 미술관 안에서의 사이니지 역할뿐 아니라, 정서를 자극하는 요소로도 기능하는 것 같았어요. 역시 글자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넘어서 정서 감응의 매체일 수 있다, 라는 생각을 새삼스레 해봤습니다.
‘어린이’의 ‘어’가 마치 ‘01’처럼 보이기도 하고, 라틴 알파벳이 꼭 종이접기 모빌 같기도 한데, 글자들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집니다. 만져질 것 같은 글자들이랄까요? 어떤 콘셉트로 이런 결과물을 도출한 것인지 그 작업 과정을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윤호
   글자들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신다니, 최고의 칭찬이네요. 감사합니다. 성북어린이미술관 꿈자람은 ‘미술의 조형 요소’를 즐겁게 경험하는 곳을 지향하고, ‘꿈자람’이라는 특색 있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디자인은 그 두 가지에서부터 출발했어요. 기본 도형인 세모·네모·동그라미를 재료로 가져왔고, ‘꿈자람’이라는 단어 속에 있는 ‘자란다’는 움직임을 도형들에 적용해 평면에서 입체로 확장시켰습니다. 평면을 보며 입체를 상상하게 하고, 글자 안에서 기본 도형들을 발견하게 하는 시그니처를 통해, 익숙한 것을 새롭게 바라보는 감각을 키워주려는 미술관의 바람을 담고 싶었습니다. 세모·동그라미·네모는 ‘성북’ ‘어린이’ ‘미술관’ 각 단어의 첫 자음 ㅅ·ㅇ·ㅁ을 상징하기도 해요. 이건 의도치 않게 딱 맞아떨어진 경우라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2019년 ‘레스트 포레스트: 경춘선 숲축제’ 아이덴티티 디자인
: 포스터와 사이니지

지난해 11월에 열린 ‘레스트 포레스트: 경춘선 숲축제(이하 ‘레스트 포레스트’) 행사에 참여하셨잖아요. 축제 기획부터 운영, 아이덴티티 및 사이니지 디자인, 인쇄물과 설치물 제작까지 대단히 광범위한 작업이었을 것 같습니다. 기획단을 비롯해 협업 디자이너 그룹, 스태프를 꾸리는 일도 만만찮았을 듯하고요.

요즘에 디자이너 분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다 보면, 코로나19 영향을 체감하게 됩니다. 전시나 행사 같은 오프라인 작업의 의뢰 건수가 확연히 줄었다는 얘기를 많이 듣거든요. 저 또한 전시·행사 리뷰를 써본 지가 오래됐습니다. 취재 자체를 못 나가고 있어서요. 그래서 더더욱 ‘레스트 포레스트’의 준비 과정이 궁금합니다. 2019년, 그러니까 아직 코로나19의 영향 아래 놓여 있지 않았을 때(상당히 오래전인 것처럼 느껴지네요···), 시민들이 한 장소에 모여 즐기는 야외 행사가 가능하던 그때, 두 분이 ‘레스트 포레스트’를 준비하던 그 시기의 작업 과정이랄까, 에피소드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강인
   이 행사는 기획 배경부터 설명해야 해서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네요. 2019년에 서울 노원구 소재 경춘선 폐선 구간의 버려진 철길을 활용한 문화 사업이 추진됐고, 삼육대학교·서울과학기술대학교·서울여자대학교로 구성된 ‘노원그린캠퍼스타운사업단’이 진행을 맡았어요. ‘레스트 포레스트’는 그 사업의 일부로서 열린 축제입니다. 축제를 같이 만들어보자고 처음 제안해주신 분들은 서울여대 시각디자인과 교수님들이에요. 축제 관련 실무는 이재원 교수님이 맡았고요. 아마 저희가 자체 프로젝트로 ‘가드너스마켓을’ 다섯 차례 열어온 걸 보시고 축제 기획과 진행, 그에 대한 디자인을 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습니다.

   축제가 열린 장소는 노원구 공릉동 ‘화랑대 철도공원’입니다. 울창한 숲속에 버려진 철길과 기차, 구 화랑대역사와 플랫폼을 보존하고 있는 넓은 공원인데, 첫 미팅 때 그 장소를 답사하자마자 바로 ‘너무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매력적이고 넓은 장소를 저희가 사용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요.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객원 협력자로 김대순 디자이너, 이가영 기획자, 그리고 디자인 스튜디오 제로랩(축제 집기 디자인 및 제작)을 섭외해 긴밀하게 협업했습니다. 서울여대 측의 구경원 님과도 준비부터 현장 운영까지 긴 기간 동안 다양한 방면에서 함께했고요.


12팀이 참여하고 〈2017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열린 5회 ‘가드너스마켓’ 포스터





‘레스트 포레스트’ 축제 현장
*입구 조형물 제작·설치, 축제 집기 디자인·제작·설치: 제로랩

   ‘가드너스마켓’보다 훨씬 큰 행사이긴 했지만, 자연과 휴식이 주제라는 점에선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다양한 이름들을 고민하다 ‘레스트 포레스트’라고 지었습니다.(탈락된 후보로는 ‘숲칙폭폭’, ‘For-Rest’ 등이 생각나네요.) 네이밍을 마친 뒤엔 화랑대 철도공원의 특성, 즉 ‘숲’과 ‘철도’를 키워드 삼아 아이덴티티 디자인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서체 ‘PEP’(디자인 Dries Wiewauters, 유통 Colophon Foundry)을 로고타입으로 지정하고, 서체를 분해한 뒤 그 안에 정보를 기입해 철길 안내 표지판으로 만들었어요. 그 표지판을 木(나무 목)-林(수풀 림)-森(수풀 삼)의 형태로 확장하고 조립해서 심벌과 패턴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이렇게 분해·조립·확장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형태들은 각각 철길이나 숲의 상징물로 활용되었고, 평면 혹은 입체로 제작되어 저마다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비주얼 아이덴티티를 작업할 때 타이포그래피의 조립과 분해를 즐겨 활용해온 것 같아요. 저희가진행했던 작업들 중에 ‘2020-2021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2020),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전시 〈Take Me Home〉(2019),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 아카데미’(2017) 등이 ‘조립과 분해’ 범주에 속합니다.

   과정과 결과 모두 저희 마음에 들고 클라이언트나 협업자 분들과 ‘하하 호호’ 하는 분위기로 마치는 프로젝트는 사실 흔치 않거든요. ‘레스트 포레스트’가 바로 그 흔치 않은 사례에 속합니다. 거의 모든 점이 좋았어요. 축제 당일 날씨도 완벽했고 운영 사고도 없었어요. 다만 기분 좋게 진행한 반면에 육체적으로는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윤호 씨와 제가 〈2019 타이포잔치: 제6회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이하 ‘2019 타이포잔치’)의 ‘잡동사니(Sundries)’ 섹션 기획을 맡고 있었고, 그 외에도 몇 가지 크고 작은 일들을 동시에 진행하던 때였거든요.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가장 바쁘고 긴장됐던 구간이었습니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마치고 남은 업무를 마무리한 뒤에 곧장 치앙마이와 빠이로 3주간 긴 휴가를 떠났어요. 그러고는 완전히 회복하고 돌아왔습니다. 휴가를 다녀오자마자 코로나19가 시작된 거고요.



〈2019 타이포잔치〉의 ‘잡동사니’ 섹션 전경.
이윤호·김강인이 이 섹션의 큐레이팅을 담당했다.
*사진: 박기수





‘2020-2021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작업
: 그래픽 아이덴티티(거리 배너, 극장 펜스와 현수막) 및 안내 책자




플랫폼엘 컨템포러리아트센터 2019년 전시 〈Take Me Home〉 작업
: 그래픽 아이덴티티(윷놀이 굿즈, 스티커, 포토월) 및 안내 책자


2017년 상반기 국립아시아문화전당 ‘ACC 아카데미’ 포스터 디자인


디자이너 이윤호·김강인의 타임라인은 2013년부터 지금까지 7~8년째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겠습니다만, 물리적으로 본다면 짧다고만은 할 수는 없겠죠. 아이가 태어나 학교에 들어갈 만한 시간이니까요. 디자이너로서의 경향, 농밀함, 작업관 같은 요소들이 크고 작은 변화를 맞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초창기와 지금을 비교할 때, 디자이너 이윤호·김강인은 각자(또는 함께) 어떤 변화(혹은 발전)를 경험했다고 생각하세요?

   윤호
   2013년에는 한 회사의 UX팀 소속으로 근무하면서 퇴근 후에 스튜디오 일도 하고 있었어요.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사람들과의 관계나 보고 등 디자인 외의 것들에 에너지를 많이 써야 했는데, 그 부분에서 피로감을 많이 느꼈습니다. 무엇보다도 회사를 오래 다녀서 나중에 과장, 그룹장까지 된다고 해도 별로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 정도 직급에 올라갔을 때는 작업 자체보다 관리, 디렉팅의 비중이 커질테니까요. 스튜디오를 하면 더 오랫동안 디자인을 할 수 있겠다 생각했고, 몇 년 후 회사를 나온 뒤에 본격적으로 김가든 스튜디오에 합류했습니다. 스튜디오 운영이 회사 다니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들었지만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어요.

   디자인에 정답은 없다고들 하지만 분명 ‘정답에 가까운’ 무언가가 있다, 라는 생각을 초기엔 많이 했었어요.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건가 하는 두려움도 있었고, 누군가가 정해놓은 규칙들을 자꾸 배우려고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좀 달라졌습니다. ‘너의 방식이 그렇다면 내 방식은 이렇고, 누가 틀리고 누가 맞다는 것은 없다’는 쪽이에요. 자신의 기준과 태도가 있으면 굳이 트렌드나 주위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게 되잖아요? 저도 그런 ‘중심’이 생긴 지는 몇 년 안 됐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중요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강인 씨와는 서로 응원을 해주는 사이이기도 합니다. 뭔가를 시도하려고 할 때 ‘좋다, 잘될 것 같다, 실패해도 괜찮으니 해보자’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엄청난 힘이 돼요. 초창기에 비해 덜 위축되고, 계속해서 뭔가를 하고 싶어지는 게 가능한 건, 동료의 존재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2017년 독립서점 ‘유어마인드’와 공동 기획한 박 인쇄 견본집 『Gold, Silver, More』


쓰레기를 다양 작업 소재로 활용하는 ‘져스트 프로젝트(Just Project)’의 잡지 『쓰레기』 1호(2018) 디자인
: 한 권 한 권 모두 다른 종이 쓰레기가 표지에 쓰였다.

   강인
   저는 학부 졸업 후 직장을 거치지 않고 곧장 혼자서 스튜디오를 시작했습니다. 그렇다 보니 중요한 것들을 남들보다 느리게 배웠어요.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학부를 마치고 바로 독립한 것 자체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조언자나 동료, 클라이언트가 하나도 없는 상태로 혼자 뭔가를 시작하는 게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 혼자서 계속 굴을 파고 있는 상태였다고 할까요? ‘좌충우돌 모험’의 기간은 줄일수록 좋다고 봅니다. 

   스튜디오 운영 초기엔 ‘어떻게 해야 멋진 것을 만들까?’에 몰두해 있었어요. 이런 태도가 결과적으로는 작업 결과물보다 훨씬 중요한 것들을 못 보게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스튜디오로 계속 생계를 유지할까?’ 또한 당시 저의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생계 문제에 과몰입을 한 탓인지, 어느 틈엔가 디자이너의 입장만 생각하는 방어적 태도를 취하게 됐습니다. 이런 시간들이 전혀 무의미하진 않았습니다만, 작업 외에도 충분히 훈련되어야 했던 것들을 모니터만 보느라 한동안 인지하지 못한 점은 아무래도 아쉽죠.

   저에 비해 윤호 씨는 시야가 넓어요. 스튜디오 합류 후 몇 년간 호흡을 맞추면서 여러 부분이 개선됐습니다. 작업 내외부로 많은 영향을 받았고, 저 혼자 감당하던 업무들이 분산되면서 제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여유도 생겼어요. 단순 ‘작업 이미지’만을 생각하던 것에서 벗어나, 이전보다 포괄적으로 프로젝트 전반을 바라볼 수 있게 된 점, 그리고 조바심 내지 않고 갈 길을 가게 된 점이 저에게는 가장 큰 변화이자 발전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는 프로젝트 전체에서 디자인 업무가 어느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하는지, 담당자의 위치와 입장이 어떤지 등 작업 외적인 부분들에 많이 신경쓰고 있어요. 물론 아직은 한참 갈 길이 멀죠. 7~8년이나 지난 이제서야 제대로 시작하는 기분입니다.

   앞으로의 방향을 이야기하자면, 저희는 스튜디오 규모를 무리해서 확장하지 않고 내실을 다진 뒤 다음 단계를 준비하려고 합니다. 독립적인 시간과 공간을 갖는 것이 저나 윤호 씨에겐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건 성향에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일정이 버거울 땐 개별 프로젝트 단위로 알맞은 협업자를 찾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한 번에 진행하는 프로젝트 가짓수는 오히려 줄여나가려고 합니다. 무리 없이 감당할 수 있는 몇 가지 프로젝트에만 온전히 집중해 좋은 결과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지속적으로 일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믿고 있고, 얼마간은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아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2019년 한글날 기념 구글 두들


2019년 〈유재하 기획전〉(대중음악박물관) 포스터


DDBBMM의 자체 프로젝트 중 『이모티콘 추모비(R.I.P. Emoticons)』라는 작업 있잖습니까. 이모티콘 수백 종을 임의의 유형별로 아카이빙한 책 말예요. 이를테면 웃는 이모티콘(^_^)이 스마일 이모지(☺️)로 대체된 상황을 ‘^_^ was killed by ☺️’라는 개념으로 해석한 게 정말 웃기고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무지개 다리를 건넌 이모티콘들의 유형이 꽤 의미심장했어요. ‘SAD AND LONELY EMOTICONS’ ‘HUNGRY AND SLEEPY EMOTICONS’ 같은 카테고리들요. 그래서 마지막 질문을 이렇게 드려보면 어떨까 합니다. 이 지구(?)의 디자인계에서 DDBBMM은 어떤 유형의 스튜디오로 기억되길(아, 물론 ‘추모되길’은 아닙니다 결코!) 바라세요? ‘SAD AND LONELY DDBBMM’은 당연히 아니겠죠?(웃음)

   윤호-강인
   ‘지구(?)의 디자인계에서의 DDBBMM의 유형’이라니··· 일단 지구 단위로 기억되는 스튜디오가 되는 것 자체가 어려워 보이네요.(웃음) 굳이 기억되지 않아도 저희만 행복하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모티콘 추모비』를 기준으로 유형을 나누자면, 저희는 ‘ACTIVE AND HEALTHY’와 ‘LOVE’에 해당하고 싶어요. 이모티콘으로는 ᕙ༼◕ ᴥ ◕༽ᕗ와 (ฅ⁍̴◊̀ ⁍̴́)و ̑̑ , 혹은 ✧(๑✪д✪)۶ᄇ٩(✪д✪๑)✧를 지향하려고 합니다. 늘 좋은 면을 바라보며 활기차고 건강하게 일하고, 맡은 바를 잘 해내며 ‘디자인계’에 몰입하지 않는 유형요.

   여담인데, 스튜디오 이름을 정할 때 후보들 중 ‘mTvTm’이 있었어요. 울면서 작업하는 모습인데, 정말 ‘SAD AND LONELY’ 스튜디오가 될 것 같아 탈락시켰습니다. ‘DDBBMM’이 훨씬 나은 것 같아요.





DDBBMM의 2019년 자체 프로젝트 『이모티콘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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