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LIFT-OFF’ 이진우·최세진2020.10.07



그래픽 디자이너 이진우·최세진은 스튜디오 리프트오프(LIFT-OFF)를 공동 운영한다. 두 사람은 수 년간 스튜디오 텍스트(TEXT) 소속 디자이너였다. 즉 스튜디오 동료였다. 독립은 이진우가 먼저였고, 최세진은 그보다 뒤였다. 지난 6월 최세진이 합류하면서 리프트오프는 2인 체제가 됐다.

학부 시절도 함께했다는 두 사람이지만, 일에 관해선 좀 단호한 면이 있다. “아무리 오래 알고 친하게 지내도, 고집 있는 두 디자이너가 협업자로서 호흡을 맞추려면 많은 대화와 시간이 필요하다”라는 말을 하는 걸 보면. 그런데 두 디자이너가 2인 체제를 결심한 계기가 조금 의외다. 이진우가 말하길 “(스튜디오 텍스트에서 먼저 독립한 뒤) 따로 2년 정도 일을 해보니, 최세진과 스튜디오를 같이하면 더 폭넓은 작업이 가능할 것 같았다”라고 한다. 각자 떨어져 있었던 덕에 오히려 서로의 실무적(!) 존재 가치를 알아보게 됐다는 의미일까? 이진우와 최세진의 2인 체제는 얼핏 애틋해 보이기까지 한다. 두 디자이너를 만나고 싶었던 이유다.

인터뷰 _ 에디터 임재훈
director@typographyseoul.com


두 분과는 2016년 인터뷰 때 뵌 적이 있지요. 당시엔 스튜디오 텍스트 소속이었습니다. 지금은 두 분이 직접 리프트오프를 운영하고 있고요. 지난 인터뷰 이후 4년간 바쁘게 지내셨을 것 같습니다. 텍스트 소속 디자이너로서의 과업과 독립 준비 병행, 그리고 독립 후 정착하기 위한 제반 작업 등이 만만찮았을 듯해요.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리프트오프를 lift off 시키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진우
각자 독립 시점이 달라서 따로 말씀을 드리는 게 낫겠네요. 2018년 3월 제가 먼저 독립해서 리프트오프를 설립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둘이 함께 스튜디오를 꾸릴 생각은 없었어요. 따로 2년 정도 일을 해보니까, 같이 스튜디오를 하면 더 폭넓게 작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올 6월 최세진 디자이너가 합류하면서 2인 체제가 됐습니다.

독립 후 가장 먼저 맞닥뜨린 문제는 전부 디자인과 무관한 문제들이었습니다. 사업자 등록부터 시작해서 부동산, 은행, 세금 업무, ···. 독립 디자이너보다는 자영업자로서의 준비 과정이랄까요. 아무리 미리 준비해도 직접 부딪혀 보니 예상 외의 문제가 생기곤 하더군요. 이전에는 내가 맡은 업무만 신경쓰면 됐는데, 독립한 뒤에는 계약부터 홍보까지 업무 전반을 책임 지고 이끌어 가야 하죠. 직업관이 달라지고 책임감이 커지게 된 계기였습니다. 최세진 디자이너와 공동 운영을 결정하면서부터는, 당연히 최소 두 배의 매입과 매출을 대비해야 했습니다.

최세진
보통 독립 준비라고 하면 고정 클라이언트를 어느 정도 확보한다거나,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는 경제적 기반 마련을 이야기하는데요. 저희는 이런 것들이 미비한 채로 무모하게 시작을 했어요. 다행히 지금은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일을 해나가고 있지만, 돌이켜보면 그렇게 좋은 방식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잘 준비해 온 측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스튜디오 텍스트에 각각 4년, 5년씩 있었는데요. 당시에는 일찍 독립해서 자리잡는 친구들 보면서 ‘나도 빨리 시작했으면 지금쯤 자리를 잡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일을 하다 보니 포스터를 디자인하고 파일을 인쇄소에 넘기는 등 실무적인 부분 외에도, 클라이언트와 소통하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응하는 방법을 익히는 것 역시 준비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4~5년은 긴 시간이지만 저희에게는 꼭 필요했다고 생각해요.



서울시극단 〈로드킬 인 더 씨어터〉 공연 아이덴티티 디자인, 2020


수제 가공육 공방 ‘소금집’ 리플릿용 포스터, 2018


스튜디오 리프트오프 홈페이지에, 일종의 패밀리사이(?)처럼 이진우·최세진 각자의 사이트가 링크돼 있더라고요. 리프트오프를 방문한 클라이언트에게 ‘작업자 선택권’을 제시하는 걸까, 하고 추측을 해봤습니다. “리프트오프에는 이진우와 최세진이라는 두 디자이너가 있고, 작업 스타일은 각각 이러합니다, 어떤 스타일을 원하십니까”라는 고객 대상 메시지처럼 보였어요. 만약 그렇다면, 리프트오프의 운영 방식은 이진우·최세진 협업 체제라기보다 이진우/최세진 분업 체제에 가까울 듯합니다. 일반 회사로 따지면 사업1팀과 사업2팀이 각자의 클라이언트를 상대하는 것처럼요. 말이 좀 길어졌는데(웃음), 질문의 요지는 이겁니다. ‘디자이너 이진우와 최세진은 리프트오프를 어떤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는가.’

‘작업자 선택권’이라니 굉장히 재미있는 관점이네요. 저희는 명확히 고정된 시스템으로 운영을 하고 있지는 않고, 그때그때 스케줄이나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서 탄력적으로 운영해요. 어떨 때는 분업을, 어떨 때는 협업을 하고, 또 어떨 때는 협업을 하다가 다시 분업하기도 합니다. 다만 저희는 가급적 모든 프로젝트를 조금씩이라도 협업을 거쳐 진행하려고 해요. 꼭 각자 파일을 수정하지 않더라도 스케치를 보고 서로 피드백을 주거나 안 풀릴 때 회의를 하는 것도 협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2017 타이포잔치: 제5회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를 위한 포스터 ‘도시 속의 움직임’(with 김다영)


그리고 저희 체제가 협업보다 분업 체제처럼 보인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아마 저희 둘의 작업 성향이 많이 달라서 그렇게 느끼셨을 것 같아요. 이진우 디자이너는 선이 굵고 명쾌한 접근을 좋아하고 최세진 디자이너는 은유적이고 묘사적인 접근을 좋아합니다. 꼭 이런 성향들이 배치되는 건 아니지만, 서로 반대되는 성향을 많이 가지고 있다 할 수 있겠죠. 그렇다 보니 작업을 할 때 서로 생각지 못했던 피드백들을 받을 때가 있어요. 물론 완전히 정반대 방향의 피드백은 대부분 작업에 녹이기가 어렵지만, 시도 자체로도 작업의 외연을 넓히는 연습이 되어서 좋습니다.

이런 시스템을 확립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오래 알고 친하게 지내도, 고집 있는 두 디자이너가 협업자로서 호흡을 맞추려면 많은 대화와 시간이 필요하죠. 그래도 저희는 학부 시절부터 텍스트에서 일하는 동안 충분한 연습을 통해 나름의 협업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 같아요.


문인이든 음악가든 영화감독이든, 그들의 데뷔작을 보면 그들 각자의 스타일과 지향점을 짐작해볼 수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 여쭤봅니다. 스튜디오 리프트오프의 데뷔작, 그러니까 첫 번째 작업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앞선 두 질문과 대답의 연장선에서 답변을 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사업자 등록 후 데뷔작’보다는 이진우·최세진의 성향이 조화를 잘 이뤘다고 생각하는 두 작업을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2017년 제18회 전주국제영화제(JIFF) 특별전 〈100필름 100포스터〉 참가작(위 이미지)입니다. 사막, 바다(El Mar La Mar)라는 다큐멘터리 영화 포스터예요.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소노라(Sonoran) 사막을 다룬 작품인데요. 이곳은 기온이 너무 높아서 밤을 틈타서만 생명체가 움직일 수 있다고 합니다. 영화는 이런 환경에서도 어떻게든 생태를 유지하는 동식물, 이곳을 통과하지 않고는 국경을 건널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을 비춥니다. 저희는 이를 표현하기 위해 사막 같기도, 바다 같기도 한 위태로운 이미지를 만들고 그 아래 인물을 작게 배치했습니다.

처음에는 각자 스케치를 따로 하다가 나중에 합쳐서 진행했어요. 한 컴퓨터로 이리저리 오브젝트를 옮겨가며 대화를 많이 나눴습니다. 단순히 두 사람의 스케치를 합쳤다기보다는, 아이디어를 융합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진우 디자이너는 사막의 모습을 최대한 묵직하고 대비감 있게 표현하려 했고, 최세진 디자이너는 인물이나 생태에 위태로운 분위기를 표현하려 했습니다. 좀 예전 작업이기는 하지만, 둘의 성향이 고루 드러난 작업이라 저희도 애착이 컸고, 주위 반응도 좋았던 기억이 있어요.





다른 하나는 올해 진행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21세기 작곡가 시리즈〉 공연 그래픽 아이덴티티(위 이미지)입니다. 이 작업이야말로 저희 둘이 ‘리프트오프’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데뷔작이라 볼 수 있겠네요. 국악 작곡가 네 팀이 음악과 무대를 선보이는 공연인데요. 저희는 각기 다른 작곡가들의 캐릭터와 작곡 방식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검정 아크릴로 음과 양의 조형 요소를 만들고, 이를 작곡가들이 자유롭게 가지고 노는 이미지를 촬영했어요.

이 작업은 기획 단계부터 합이 잘 맞았습니다. 촬영 콘셉트 회의 때 저희 둘 머릿속에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거든요. 촬영장에서의 협업도 아이디어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다행히 현장 분위기도 좋았고 원하는 느낌의 이미지를 촬영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파일을 주고받으며 사진을 배열하고 그래픽을 올려 마무리했고요. 이 작업 역시 잘 진행된 협업 같아서 애착이 갑니다.



〈21세기 작곡가 시리즈〉 캐릭터 포스터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를 위한 또 다른 작업, 〈易[역]의 음향〉 공연 아이덴티티 디자인, 2020


최근에 Parallel-Parallel이란 사이트를 알게 됐습니다. 코로나19 탓에 진행 도중 취소된 세계 각지의 디자인 프로젝트들을 아카이빙하는 곳이더라고요. 안타깝기도 하면서, 뭔가 디자이너들끼리의 연대감이 느껴졌습니다. 이 위기를 우리는 어떻게든 타고 넘는다, 하는 파이팅(!)처럼도 보였어요. 여러모로 힘든 이 시국, 두 분은 어떻게 헤쳐 나가고 계십니까.

헤쳐 나가기보다는 버텨내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프로젝트들이 취소되기도, 연기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스케줄이 겹치기도 해서 힘들고 난감한 상황들이 생깁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이런 혼란들이 일어나다 보니 디자이너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자영업자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방역 원칙을 준수하면서 급박하게 변동되는 일상과 업무 환경에 잘 대응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어쩌다 보니 저희는 공연이나 전시 같은 문화 예술계 관련 일을 많이 진행해 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는 문화 예술계에 항상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업무적인 부분을 떠나서 무대와 전시장이 닫혀 있는 지금이 무척 안타깝습니다. 많은 부분 온라인으로 대체되고는 있지만 완벽한 대안이 될 수는 없으니까요. 코로나 이후의 공연과 전시가 어떤 양상일지는 모르겠지만, 저희도 더 나은 소통의 방식들을 계속 고민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울문화재단 발간물 『서울지역 문화예술공간 읽기』 디자인 및 제작, 2020


예술영화관 헤이리시네마 개관 기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특별전〉 아이덴티티 디자인, 2016


스튜디오 리프트오프를 통해 두 분이 함께, 혹은 각자 가 닿고 싶은 ‘궁극의 지점’을 알고 싶습니다.

최세진
‘10년 뒤에 좋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추상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진부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주어진 여건 안에서 최선의 결과를 끌어내는 게 좋은 디자인이고, 프로젝트 하나하나에 책임감과 성심으로 임하는 이가 좋은 디자이너라고 생각해요. 이게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하루이틀 밤새는 것과는 다르니까요. 책임감도 있어야 하고, 페이스 배분도 계획적으로 잘 해야 하고, 변수에 따라 임기응변도 해야 하죠. 클라이언트와의 관계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작업에 대한 열의도 계속 가져가야 하고요.

얼마 전에 한 배우의 인터뷰를 감명 깊게 봤어요. 20년 정도 경력이 있는 분인데, 현장을 소중히 여기고 함께 일하는 이들을 존중하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디자이너도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도 배우처럼 누군가 찾아줘야 일이 생기는 직업이고, 본질적으로 서비스직이니까요. 그런데 디자인은 현장성이 강조되는 일이 아니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이런 태도가 덜 강조되는 것 같아요. 결국 ‘10년 뒤에 좋은 디자이너가 되고싶다’는 말에는, 꾸준히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과 10년간 살아남고 싶다는 소망이 담겼다고 볼 수 있겠네요.



국립한글박물관 제3회 한글실험프로젝트의 워크숍 ‘예측 불가능한 한글 3: 둠칫한글’ 포스터, 2019


이진우
저 역시 ‘10년, 20년, 혹은 그 뒤에도 지금보다 더 좋은 디자이너로 일하고 싶다’가 지금은 가장 궁극적 목표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라는 직업 특성상, 일과 나를 분리하기가 힘들어요. 일이라는 것이 하다 보면 실수도 생기고, 의도하지 않은 문제도 발생할 수 있잖아요. 일과 나를 분리 못하면, 그 결과를 오롯이 스스로에게 짐 지우게 되더군요. 지금은 일과 제 자신을 적절히 분리하면서 디자이너라는 직업인으로서 장거리 레이스를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립 이후 ‘좋은 디자이너는 어떤 디자이너인가’ ‘좋은 작업은 어떤 작업인가’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습니다. 정확히는 바뀌었다기보다 다각화되었다고 할까요.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 그리고 디자인 결과물을 소비하는 대중의 시각이 서로 같을 수는 없습니다. 이전에는 ‘디자이너의 시각에서 봤을 때 좋은 작업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가 좋은 디자이너’라고 생각했어요. 독립하고 나서 디자인 결과물뿐 아니라 디자인 의뢰 이전의 사업 기획, 납품 이후의 클라이언트 혹은 대중의 반응 등을 밀접하게 느껴보니, 좋은 디자인과 디자이너라는 기준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디자이너, 클라이언트, 대중 모두가 만족한다면야 가장 좋은 결과겠죠. 그런데 그건 쉽지도 않을 뿐더러, 그렇게 되려면 디자이너가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 이를테면 콘텐츠의 내용이나 트렌드 같은 시의성까지 모두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평생 직업이라 한다면 너무 거창하고, 제가 할 수 있는 한 오래도록 계속 발전하는 디자이너로 남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보다 객관적으로, 다각도로 바라보면서 더 나은 디자이너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9 타이포잔치: 제6회 국제 타이포그래피 비엔날레〉를 위한 포스터 ‘Typepraxisc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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