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포뮬러’ 신건모·채희준2020.11.16



그래픽 디자이너 신건모와 글꼴 디자이너 채희준은 스튜디오 ‘포뮬러(formula)’를 공동 운영한다. 하지만 두 디자이너의 작업이 접합되는 일은 많지 않다. 신건모·채희준은 form A, form B라는 각자의 영역을 명명/구획해놓고 별동대처럼 활동한다. 두 사람 스스로 밝히듯이 “특정한 경우”에만 협업한다. 그럼에도 에디터 눈에는 A와 B의 완성 폼(form)이 어쩐지 협업의 산출물로 보인다. 적잖은 그래픽 디자인 작업물들이 글자를 위시하고 있고, 상품으로 출시된 글자들은 속속들이 그래픽 요소로서의 놓임새를 예비해둔 인상을 풍겨서다. 이런 얘기를 꺼내니 form A와 form B 각 담당자가 친절히, 그리고 긴 대답을 내놓는다. 요컨대 이 인터뷰는 form A와 form B, 그래픽과 글자의 연동 체계에 관한 formula(특정한 일을 이루기 위한 공식)라 할 수 있다.

인터뷰 _ 에디터 임재훈
director@typographyseoul.com



전주국제영화제 〈100필름 100포스터〉 출품작
[좌] 〈로스앤젤레스〉(피터 보 라프먼드 감독), 2019 / [우] 〈양치기 여인과 일곱 노래〉(푸시 펜드라 싱 감독), 2020


우선은 신건모・채희준이 어떤 방향성을 지닌 디자이너인가 하는 걸 먼저 묻고 싶습니다. 그래야 두 분의 ‘포뮬러’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스튜디오 사이트의 소개문을 인용해보겠습니다.

“글자와 글자를 다루는 것에 보통 이상의 관심을 갖고 있다.” _ 그래픽 디자이너 신건모
“글자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형태의 상관관계를 생각하고 미세한 차이를 감지하고 연구한다.” _ 글꼴 디자이너 채희준

얼마간 함축적이고 약간은 모호하게도 읽힙니다만, 어쨌든 두 분 모두 ‘글자’를 품고 있다는 건 확실히 알겠습니다. 부연 설명을 듣고 싶은데요. 그래픽 디자이너가 글자를 “보통 이상”으로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지, 글꼴 디자이너가 말하는 “감정과 형태의 상관관계”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요.

form A ― 신건모
저에게 글자는 마치 쌀처럼 느껴집니다. 글자를 다루는 것은 밥을 짓는 것과 비슷하고요. 우리는 다양한 식재료로 만든 음식들을 즐기지만, 가장 자주 섭취하고 기본이 되는 음식은 밥입니다. 그리고 밥의 맛과 질은 식사의 만족도를 좌우하는데, 사람들은 흔히 ‘밥만 먹어도 맛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죠. 마찬가지로 그래픽 디자인 작업에 있어서, 특히 글자의 비중이 높은 편집 디자인에서 타이포그래피는 전체 작업의 질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밥을 잘 짓기 위해서는 쌀의 종류와 특성을 잘 알고 그에 맞는 조리를 해야 하듯이, 상황에 맞는 타이포그래피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글꼴의 종류와 특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또 글자를 어떤 크기, 어떤 간격으로 배치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죠. 이런 측면에서 저는 글자와 글자를 다루는 것에 보통 이상의 관심을 기울입니다.


『주간 문학동네』 웹사이트 디자인, 2020

form B ― 채희준
저는 창작을 할 때 본인의 감정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전에 떠올렸던 막연한 느낌, 그 감정의 근원을 잘 추적해야 정확한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머리로만 생각하던 형태나 느낌을 막상 구현해냈을 때 한 번에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강렬하고 압도적인 느낌을 상상했다면 그 아우라를 정확히 얻어낼 때까지, 부드럽고 서정적인 느낌을 상상했다면 그 감성이 느껴질 때까지 끝까지 연구해야 합니다. ‘어떤 요소들이 그런 감정들을 이끌어내는가?’ 생각하며 세심히 관찰하고, 수많은 경우의 수들을 적용하며 발전시켜야 처음 상상한 결과물에 도달할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건 글자 디자인뿐 아니라 모든 창작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고요, 2020


초설, 2019


신건모가 form A, 채희준이 form B. 이렇게 두 분의 작업 유형-영역이 딱 구분돼 있더군요. 스튜디오 소개문에 따르면 “특정한 경우에는 함께 작업을 수행”하고요. 바꿔 말하면, 일반적인(특정하지 않은) 경우엔 대체로 투 트랙 체제라는 의미일 텐데요. 스튜디오를 공동 운영한다기보다 ‘공유’하는 쪽에 좀더 가까워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저는 포뮬러를 사이트 정보와 주변 디자이너들의 얘기로만 이해하고 있는 입장이지요. 스튜디오 운영의 디테일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서로 다른 form A와 form B는 어떻게 합치된 formula를 성립해 나가는 것인가요?

form A ― 건모
사실 저희는 주로 수행하는 작업이 다르기 때문에 수입원도 다릅니다. 저는 클라이언트의 과업을 진행하고, 채희준 디자이너는 자신이 만든 폰트를 판매하죠. 따라서 저희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스튜디오를 공동 운영하지는 않습니다. 현재는 물리적인 공간을 공유하고 있지도 않고요.

작업 의뢰가 들어왔을 때, ‘특정한 일을 이루기 위한 방식’이라는 뜻이 담긴 ‘formula’라는 이름처럼 작업 성격에 따라 누가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적합한지, 혹은 함께하는 것이 적합한지 판단합니다. 작업을 함께하지 않더라도 서로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주고받는데, 이를테면 제가 수행하는 작업에 필요한 글자를 채희준 디자이너가 만들어주기도 합니다. 글자를 생산하는 입장에 있는 채희준 디자이너와 글자를 사용하는 입장에 있는 제가 밀접하게 견해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저희가 하는 모든 작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form B ― 희준
신건모 디자이너의 말처럼 저희는 각자 영역에서 디자인을 하면서 지속적인 영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디자인에 대한 각자의 견해를 공유해왔고, 이런 관계를 대외적으로 구현한 게 포뮬러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법적 구속력으로 유대하는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금전적 이해관계 없이도 생각을 주고받습니다. 디자인 본질에 대한 궁금증이 있을 때 해답을 얻어내기 위해 대화하고, 이런 협력은 늘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습니다.


앞 질문과 이어질 수 있겠습니다. form A, form B로 나뉘어 있긴 해도, 어쨌거나 두 영역의 작업 모두 ‘포뮬러’라는 상위 카테고리에 귀속되는 것이겠지요. 신건모・채희준이 꼽는 ‘가장 포뮬러다운(포뮬러의 대표작으로 소개할 만한)’ A・B 각 영역의 작업들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form A ― 건모
제가 소개하고 싶은 작업은 2018년에 작업한 ‘온양민속박물관 리플릿’입니다. 병풍식으로 접지된 면을 다 펼치면 A4 남짓의 크기인 한 장짜리 리플릿이지만, 이 작업에는 글자를 다루는 저의 태도가 많이 드러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표지에서 제목을 배치한 방식, 안쪽 면에서 문단의 외곽선을 처리한 방식은 사용자가 단순히 내용을 읽는 것을 넘어 보는 것으로도 조형적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의도한 결과입니다. 또한 이 리플릿에는 총 아홉 종류의 폰트를 섞어서 사용했습니다. 괄호나 겹낫표 같은 일부 문장부호들은 직접 만들었고, 화살표만을 위해 별개의 폰트를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화살촉 모양도 폰트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이죠. 물론 이런 부분들이 사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저는 작은 디테일들이 모여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폰트를 선택하고 조합하는 데 많은 공을 들입니다.


온양민속박물관 리플릿 디자인, 2018


온양민속박물관 핸드북 디자인, 2019


form B ― 희준
올해 출시한 ‘신세계’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신세계는 한자 명조체인 송체(宋體)의 양식을 한글 구조에 자연스럽게 입혀보고 싶은 마음으로 제작한 활자예요. 긴 시간 동안 지켜보며 연구했고, 2020년 9월에 출시했습니다. 정식 출시 전 신건모 디자이너가 온양민속박물관 〈일상의 향유〉 전시에 활용했는데요. 프로젝트에 어울리는 적절한 서체라고 판단한 것 같고, 제 입장에서도 스스로 생각하던 이상적인 모습으로 쓰였습니다. ‘신세계’는 스튜디오 차원의 시너지까지 발생시켜준 활자라고 생각합니다.




신세계, 2020


온양민속박물관 기획전 〈일상의 향유〉 아이덴티티 디자인, 2020


form A 신건모와 form B 채희준은 “특정한 경우” form AB 작업을 수행하잖아요. 2018년 ‘서울시 대표 비보이(B-Boy)단’ 로고타입 작업이 그 사례일 듯한데요. 두 분이 어떤 계기로 함께 진행하게 된 건지, 이 프로젝트는 왜 “특정한 경우”였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form A ― 건모
평소에는 서로 작업하는 영역이 다르긴 하지만 협업을 했을 때 더 좋은 결과물이 예상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로고타입이 대표적 경우죠. 제가 전반적인 콘셉트와 조형의 방향을 잡더라도, ‘타입(글자)’을 다듬는 감각은 채희준 디자이너가 아무래도 더 예리해요. 특히 한글의 경우 그 차이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데, 획의 굵기나 속공간이 미묘하게 달라져도 글자의 균형이 무너지거나 어눌해 보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서울시 대표 비보이단 작업도 기조가 되는 라틴알파벳 로고타입은 제가 작업했지만, 한글 로고타입은 채희준 디자이너가 작업하는 것이 더 좋다고 판단했습니다. B-Boy의 B를 비-보이의 ‘ㅂ’으로 사용해 달라는 저의 무리한(?) 부탁에도 무리 없이 완성해주었어요. 채희준 디자이너가 그만큼 한글을 그린 경험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form B ― 희준
저는 글자를 ‘활자화’하기 위해 모듈을 정리하고 질서를 구축하는 데 익숙합니다. 그렇다 보니 자유로운 형태를 떠올리기는 어려워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종종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레터링 결과물을 보면, 제 머리에선 나올 수 없는 형태라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서울시 대표 비보이의 한글 로고타입도, 신건모 디자이너로부터 형태적 아이디어를 받아 정리하고 음절을 파생했습니다. 이렇게 서로의 장점을 살려서 적절하게 협업을 이룰 수 있는 프로젝트가 흔치 않기 때문에 “특정한 경우”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서울시 대표 비보이단’ 아이덴티티 디자인, 2018


저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글자 다룸새’에 관심이 많은 편입니다. 글자를 그래픽-이미지 요소로 활용하는 방식이 흥미로워서요. 글을 쓰는 직업의 한계일 수도 있겠는데, 아무래도 제 눈은 ‘글자(문자)로서의 글자’에 익숙합니다. 읽고 읽히는 성질의 글자요.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한 번 드려봅니다. 그래픽 디자이너 신건모는 글자를 어떻게 다루는가, 자신의 작업에서 글자를 어떤 개념으로 바라보는가.

form A ― 건모
글자의 주된 기능이 정보 전달이긴 하지만, 잘 읽히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옷을 입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잖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보여지는 것에도 신경을 씁니다.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지 고려하고 때와 장소, 상황에 맞춰 옷을 보기 좋게 입으려고 노력하죠. 글자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읽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이는 모습도 중요하죠. 어느 정도 개성도 필요하고요. 그래서 주제, 정서, 매체 등 작업의 성격에 맞는 보기 좋은 타이포그래피를 구사하기 위해, 글꼴 자체가 지닌 조형과 글자들의 배치로써 완성되는 전체적 ‘꼴’을 깊이 고민하는 편입니다. 특히 저는 더하는 디자인보다 ‘빼는 디자인’을 추구합니다. 그렇다 보니 다른 그래픽 요소들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글자로 매력적인 지면(화면)을 구성하려는 시도를 많이 해요.



〈국립현대미술관(MMCA) 현대차 시리즈 2018: 최정화―꽃·숲〉 도록 디자인, 2018


‘글꼴 디자인이란 글꼴 디자이너(만)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개발의 영역이 꼭 필요하잖아요. 글자가 한 벌의 폰트, 즉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으로 제너레이팅(font generating) 되려면 말예요. 폰트 개발사 소속이 아닌 독립 디자이너로서, 채희준은 폰트 ‘개발’ 실무를 어떻게 진행하는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질문은 저랑 가까운 어느 글꼴 디자이너를 대신하여 드리는 것입니다.(웃음)

form B ― 희준
지금은 개발 영역의 실무도 직접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폰트 제작을 지원하는 LineGap 김대권 대표에게 제너레이트 수업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개발 영역의 실무를 접했습니다. 그러나 엔지니어 분들이 제너레이트 하는 방식이 저로서는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서 수업을 듣고 나서도 제너레이트 쪽은 외주로 진행했었습니다.

이후에 좀더 정확하게 엔지니어 영역을 공부하고 싶어서 FontPublisher 노영권 대표에게도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수업에서 들었던 내용을 토대로, 디자이너인 제 입장에서 편리하게 제너레이트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경우의 수를 소거법으로 제너레이트 하면서 개발 영역의 변수들을 체득했고 생각보다 긴 시간이 걸렸어요.

지금은 원하던 지점에 도달했지만 제너레이트라는 것이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서 계속 공부 중이고, Leedotype의 강현웅 개발자와 소통하고 협력하고 있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면서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었는데, 강현웅 개발자와 같이 고민하고 테스트하니 시너지가 생기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폰트를 제작하는 일이 디자이너만의 영역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이야기에 공감합니다. 그래서 앞으로 디자이너뿐 아니라 엔지니어 분들의 능력과 가치가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올해, 두 달도 안 남았습니다 이제. 좀 이른 감이 있지만, ‘fomula of 2021’에 대한 구상과 계획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form A ― 건모
글자를 사용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입장에서 평소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형태의 글꼴들이 있었어요. 그런 글꼴들을 채희준 디자이너와 협업하며 제작할 계획입니다. 개인적으로 크게 기대하는 프로젝트예요.

form B ― 희준
전과 다를 바 없이 계속 활자를 생산할 예정입니다. 그나마 특별한 구상이라면, 신건모 디자이너와 협업해 활자를 제작한다는 것이겠네요.


청조, 2017


청월,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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