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읽자이너] #2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2021.03.03



한 달 한 권
1 제목 2 차례  3 서문
딱 세 가지만 속성 소개

일단은 1, 2, 3만 읽어보는 디자이너
 123 읽자이너 

 #2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123 읽자이너」는 한 달에 한 권, 디자이너들을 위한 책 추천 시리즈다. 책 전체 내용을 요약 설명해드리진 않는다. 진지한 서평을 해볼 참도 아니다. 다만 딱 세 가지, 제목·차례·서문만, 딱 여기까지만 소개한다. 첫 책 『디자인학: 사색의 컨스텔레이션』에 이어,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메리 앤 스타니스제프스키 저, 박이소 옮김, 현실문화, 초판 1997, 3판 2020)를 두 번째 책으로 골랐다.


ⓒ typography seoul

1  제목

원제는 『Believing is Seeing: Creating the Culture of an Art』다. 직역하면 이렇다. 믿는 것이 곧 보는 것: 미술 문화 창조하기. 이런 식의 의역도 가능할 것이다. 믿는 대로 봄으로써 만들어진 미술 문화. 혹은 이 책 뒷날개에 적힌 의문문 ‘예술은 누가 결정하는가?’로 간소화할 수도 있다. 좀더 단정적으로 퇴고하면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라는 최종 제목에 이른다. 본문 첫 문장은 제목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은 미술과 미술이 아닌 것, 그리고 그 외의 사물들이 어떻게 의미와 가치를 갖게 되는가에 대한 연구다.”



차례

저자가 밝히고 있듯 이 책은 미술사 입문서다. 다만 변주가 들어가 있다. 저자의 통찰(또는 주장)이 바로 그 변주다. 미술의 역사라 일컬어지는 일련의 시간대와, 이를 구성하는 각종 미술품들은 어쩌면 우리(미술 제도권 관계자 및 일반 대중)의 ‘믿음’이 만들어낸 결과물일지 모른다. ···라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우리가 어떤 조각이나 그림을 ‘미술’이라 믿는 순간, 그것들은 ‘미술품’이 되고 ‘미술사’의 일부가 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서는 역자의 글을 참고해볼 만하다.

이 지적은 이런 과거의 이미지들이 ‘예술작품’ 또는 미술로 제시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예술’에 대해서 알고 있는 갖가지 선입관―고귀한 것, 지위, 천재, 진선미의 가치, 문명의 꽃 등―에 영향 받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며, 그것이 원래의 이미지를 오해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선입관은 과거를 신비화시키며 불투명하게 만드는데, 과거는 그것이 무엇이었던가를 알려주기 위해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그 무엇이 아니라는 것이다.  본문 12쪽 각주: 역자의 글

저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미술이 아니고, 이 작품을 희화화한 마르셀 뒤샹의 ‘L.H.O.O.Q.’는 미술이라고 구분한다. 이때 ‘미술이 아니다 / 미술이다’ 구문은 일종의 문학적 수사(환유, metonymy)로 받아들일 것을 권한다. 그래야 저자의 의도가 좀더 선명히 읽힌다. 위 옮긴이의 해설을 인용하면, 다 빈치의 ‘모나리자’는 예술작품 또는 미술로 제시되기 전(선입관과 신비화가 덧입혀지기 전) “원래의 이미지”다. 이 “원래의 이미지”에 대한 선입관·신비화의 결과물, 즉 ‘미술(예술)’을 조소한 것이 뒤샹의 작품이다. 다 빈치와 뒤샹의 모나리자상을 두고 ‘미술이 아니다 / 미술이다’ 구분한 저자의 의도가 이제는 얼마간 와 닿는다. Believing is Seeing!

요컨대 이 책은 아래 10개 챕터의 세계미술사를 배경으로 깔아두고, ’무엇이 미술이고 미술이 아닌지’ 그 진위 여부 판별법을 알려주는 개론서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본문 차례
미술이란 무엇인가
미술과 근대적 주체
‘예술’이라는 용어
미학: 예술의 이론
미술창작이라는 특권
아카데미
박물관
미술사와 모더니즘
아방가르드와 대중문화
오늘날의 미술과 문화



3  서문

번역서의 경우, 원저자 서문보다 역자 서문이 ‘책을 여는 글’로서 좀더 충실할 때가 있다.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도 그렇다. 이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면, 반드시 옮긴이의 글을 맨 먼저 일독하기 바란다. 원제 『Believing is Seeing』에 대한 해설과 더불어, 이 책의 주요 키워드인 ‘보기(seeing)’의 정의가 친절히 담겨 있으므로.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seeing is believing)’라는 말의 잠재적 의미는 ‘본다’는 원초적 행위가 언어의 커뮤니케이션보다 선행하는 것이라는 데 있다. 이렇게 보는 것과 아는 것 사이에 뗄 수 없는 관계가 있기는 하지만, 그 관계가 항상 평행하거나 정확히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그 말의 앞뒤를 바꾼 이책의 원제, ‘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believing is seeing)’는 그 관계가 항상 불안정하며, 우리가 사물을 보는 시각은 오히려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나, 혹은 믿고 있나에 깊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역설적이고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역자 서문 「글을 옮기면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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