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석훈의 한글 디자인 품과 격 #12 한글 글꼴 복원 첫 번째 ‘고문서 복원 폰트’2021.07.09



이 글은 『한글 디자인 품과 격(편석훈 저, 윤디자인그룹, 2020) 내용 일부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더 많은 내용은 책 안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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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한글은 우리 겨레의 가장 빛나는 문화유산’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난 2013년 한글날이 법정공휴일로 재지정되었을 당시, 수많은 사람들은 한글 사랑을 언급하며 세종대왕의 업적을 찬양했다.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에게 한글이 ‘왜’ 빛나는 문화유산인지 물어보면, 대답은 너무나 뻔했다. 
“우리 겨레의 고유 글자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대다수이고, “세계에서 으뜸 가는 과학적인 글자”라고 하거나 “지구상에 존재하는 여러 글자 가운데 한글처럼 만든 목적과 만든 사람이 분명한 글자는 흔치 않다”라고 구체적으로 대답하는 경우는 극히 일부였다. 
좀더 세부적으로 한글 문자가 왜 과학적인지 혹은 한글 서체(폰트) 한 벌을 만들기 위해서는 몇 개의 글자가 필요한지(무려 11,172자의 확장자가 필요하다)에 대해 물어보면 대답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정작 대다수 사람들은 한글에 대해선 정확히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 것이다.

윤디자인그룹의 전신인 윤디자인연구소는 한글 디지털 폰트 사업, 즉 한글 ‘디자인’으로 시작한 회사다. 디자인에 방점을 둔 이유는 한글 자체를 연구하는 곳이라기 보다는 한글의 조형성을 디자인으로 풀어내서 디지털화하는 데 중점을 둔 곳이기 때문이다. 
사실, 한글의 조형성에 대한 평가나 정의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많다. 한글의 독창적인 조형성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한글 낱자의 특징, 한글 모음과 자음의 공간 조형성, 문장에서의 가독성 등 끊임없이 논의되어야 할 사항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윤디자인그룹은, 우리가 다소 막연하게 인식하고 있는 한글의 조형적인 특징을 최대한 수학적 증명이 가능한 형태로 표현해내야 한다는 걸 숙제를 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한글을 제대로 알리는 또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왔다.

전통 한글의 복원 역시 이 맥락에 닿아 있다. 아니, 어쩌면 이 방법이 한글의 조형성을 파악하는 첫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단순히 복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현대화하는 작업이 필수로 수반되어야 제대로 한글 디자인의 우수성을 알리는 발판이 되어줄 것이다. 

말로만 한글을 치켜세우는 것이 아니라 한글의 가치와 그 가치의 쓰임을 실제로 보여주어야 제대로 된 ‘한글 문화’를 파생시킬 수 있기에, 전통 한글의 복원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글 고문서의 디지털 복원, ‘월인석보’와 ‘간이벽온방’

월인석보(月印釋譜)와 간이벽온방(簡易辟瘟方) 디지털 복원 프로젝트는 2003년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우리문화원형복원디지털사업의 일환으로 진행한 ‘고문서 및 전통문양의 디지털 폰트 개발’에 윤디자인연구소가 참여하면서 시작되었다. 
‘우리 한글의 아름다움을 가장 잘 표현하고 복원 가치가 있는 한글의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고문서를 찾아 그 원형을 디지털 폰트로 복원하고, 단순히 클립아트 소스로만 사용할 수 있었던 전통문양을 디지털 폰트로 개발해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공급함으로써 일반 사용자들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 콘텐츠화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주요 내용이었다. 
당시만 해도 고문서는 문화적 가치가 있음에도 보관 과정에서 훼손되거나 소실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고문서의 글꼴들을 디지털 폰트로 개발하면 그 가치를 영구히 보존할 수 있었기에 그 의미가 컸다. 전문가들의 의견과 추천을 통해 여러 고문서중 월인석보와 간이벽온방이 이 프로젝트의 복원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월인석보는 세종 29년(1447년)에 쓰인 석보상절(釋譜詳節)과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을 합본하여 세조 5년(1459년) 목판본으로 간행된 책이다. 석보상절은 소현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조가 세종의 명을 받고 석가의 일대기를 우리말로 번역한 책이며, 월인천강지곡은 세종이 석보상절을 보고 석가 세존의 일대기를 국한문의 악장체로 읊은 찬불가사집이다. 
월인석보가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을 합본한 책이라고 하지만, 책의 내용이나 문장 등에 상당한 차이가 있어 전혀 새로운 문헌이라고 할 수 있다. 
1446년 훈민정음 반포 당시의 서체 형태가 단단한 고딕 계열이었다면, 1447년 반포 이후인 월인석보체는 고딕과 명조 계열의 중간 형태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명조체의 세리프와 비슷한 특징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인석보체는 고딕과 명조의 특성을 지님과 동시에 안정적 구조와 간결한 꾸밈을 가진 서체로, 당시의 서체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평가된다.

간이벽온방은 조선 중종 19년(1524년)에 간행된 의학서적으로, 염병에 대한 예방법과 치료법을 담고 있는 고서다. 문장에 나타나는 16세기 한문은 한문학계, 언문은 국어학계에서 연구할 가치가 있는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간이벽온방 언해본의 한글 서체는 해서체에 가까운 전서체로, 유연하며 자모음의 짜임이 단정하고 아름답다고 평가 받고 있다. 이 책의 한글 문자는 자모음의 종류가 다양하고 합자의 종류도 423자로, 한글 글꼴을 개발하는 데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되었다. 

이렇게 선택된 두 문서의 폰트 개발은 수많은 자료 수집, 그리고 반복에 반복을 거듭한 검증을 통해 완성될 수 있었다. 진행 과정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1) 원본 확보 : 월인석보(홍윤표 교수), 간이벽온방(박병천 교수)
(2) 고해상 필름촬영
(3) 원도 스캐닝(Original Drawing Scanning)
(4) 기초 모듈 작성 : 형태와 구조 파악 및 기본 서체 설계, 추출된 자형 보정


월인석보에서 디지털 폰트 작업을 위해 필요한 글자 추출


월인석보에서 추출한 글자의 형태를 보정해 디지털 폰트로 개발


(5) 전문가 자문 - 월인석보(홍윤표 교수), 간이벽온방(박병천 교수)
(6) 모듈을 기초로 한 폰트 개발 : 2,350자 모듈 디자인 구성(폰토그라퍼-폰트 개발 프로그램-로 서체를 불러온 후 백터 파일로 전환 작업), 기본 자모 디자인과 글꼴의 형태 보정 



모듈을 기초로 한 폰트 개발 과정


(7) 1차 결과물에 대한 전문가 자문
(8) 추가 작업 및 수정, 보완 : 견본 조판 실험(12포인트에서 36포인트까지 크기별 출력 후 각각의 글꼴 완성도 확인), 완성형 폰트 조합 및 수정
(9) 힌팅 처리(가독성 증진)
(10) 오탈자 검수 및 All code 테스트
(11) PC 설치를 위한 인스톨러 구성
(12) 한국콘텐츠진흥원 다운로드 사이트 업로드


디지털 폰트로 개발된 전통문양

전통문양의 디지털 폰트 개발은 당시 윤디자인연구소가 최초로 시도하는 프로젝트였다. 우리나라 전통문양이 디자이너들의 일러스트 작업에 의해서만 사용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디지털 폰트로 손쉽게 그래픽 디자인에 적용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하였다. 

전통문양 역시 전문가(임영주 전 한국전통공예미술관장)의 추천과 감수를 통해 우리 고유의 문양 중 복원 가치가 있는 전통문양을 선별하여 디지털 폰트로 개발했으며, 디자이너 및 관련 업계에서 다양한 2차 산업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도록 뷰어(Viewr, 폰트처럼 자판 구조로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프로그램)로 개발했다. 특히, 전통문양의 경우에는 자료 수집이 쉽지 않아 작업자들이 애를 먹기도 했다. 그때의 과정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월인석보와 간이벽온방에서 추출한 디지털 폰트는 각각 한글 2,350자와 영문 94자, 약물(기호와 특수문자) 986자로 구성되며, 전통문양은 인물, 불교, 귀문, 동물, 식물, 길상문, 기하문, 구름문, 건축 등 9개 항목으로 분류하여 각각 A~Z까지의 영역에 문양을 지정해 알파벳을 눌러 사용할 수 있는 뷰어로 개발되었다. 

월인석보와 간이벽온방 폰트 그리고 전통문양은 지금도 한국콘텐츠진흥원 문화콘텐츠닷컴의 문화원형 라이브러리 '폰트' 코너에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월인석보체


간이벽온방체


전통문양


시리즈  편석훈의 한글 디자인 품과 격
#1 ‘30년 스테디셀러’ 윤명조·윤고딕 ➲ http://www.typographyseoul.com/news/detail/1280
#2 ‘고딕스러운 굴림, 굴림스러운 고딕’ 윤굴림 ➲ http://www.typographyseoul.com/news/detail/1286
#3 ‘노브랜드’ 전용서체와 타이포브랜딩 ➲ http://www.typographyseoul.com/news/detail/1292
#4 모두를 위한 폰트, UD폰트와 UCD폰트 ➲ http://www.typographyseoul.com/news/detail/1297
#5 윤미디어 첫 번째, 〈정글〉 ➲ http://www.typographyseoul.com/news/detail/1280
#6 윤미디어 두 번째, 〈온한글〉 ➲ http://www.typographyseoul.com/news/detail/1309
#7 윤미디어 세 번째, 〈The T〉 ➲ http://www.typographyseoul.com/news/detail/1314 
#8 윤미디어 네 번째, 〈타이포그래피 서울〉 ① ➲ http://www.typographyseoul.com/news/detail/1322
#9 윤미디어 다섯 번째, 〈타이포그래피 서울〉  ➲ http://www.typographyseoul.com/news/detail/1328
#10 한글 폰트의 대중화를 이끈 ‘스타 폰트 ➲ http://www.typographyseoul.com/news/detail/1334
#11 변신이 아니라 진화다 ‘머리정체2 시리즈’ ➲ http://www.typographyseoul.com/news/detail/1340



㈜윤디자인그룹 대표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우리 문자 한글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 꾸준한 본문체 프로젝트, 국내외 유수 기업들과의 전용글꼴 개발을 이끌어 오고 있다.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한 브랜딩 영역을 개척함으로써 윤디자인그룹의 정체성을 기존의 글꼴 디자인 회사에서 타이포브랜딩(typo-branding) 기업으로 전환했다.


『한글 디자인 품과 격』
지은이  편석훈
출판사  ㈜윤디자인그룹
출간일  2020년 10월 9일 한글날
크기 및 분량  175 × 225 × 24.5㎜, 264쪽
ISBN  9791195218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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