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디렉터 장성환 "디자이너는 디자인'도' 잘해야 한다"2012.04.08

장성환은 글 잘 쓰는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잘 쓰기도 하지만, 일단 ‘많이’ 쓴다. 현재 타이포그래피 서울에 연재 중인 칼럼 「디자인 인 시네마(Design in Cinema)」는 2주에 한 편씩, 그러니까 매달 두 편씩 써내고 있다. 디자인 관련 신간 서적이 나올 때마다 그에게 서평을 써달라는 요청도 많다. 최근에 그는 지난달 출간된 신간 <정보는 아름답다>의 서평을 쓰기도 했다. 

장성환은 또한 많이 읽는다. 그가 운영하는 그래픽 편집 디자인 스튜디오 ‘디자인스튜디오 203’(이하 203)엔, 다양한 종류의 인문학 서적들이 빼곡히 진열돼 있다. 집안에서도 화장실, 침대 머리맡 등 곳곳에 책을 놓아두고 손에 잡히는 대로 읽는단다. 많이 쓰고 많이 읽는 이유에 대해 장성환은 “디자이너는 아는 게 많아야 한다”고 답한다. 그러면서 “디자이너는 디자인만 잘해야 하는 게 아니다. 디자인도 잘해야 한다”란 말을 덧붙인다. 과연 장성환이 생각하는 좋은 디자인과 디자이너란 무엇일까.

취재·글. 임재훈

"긍정적인 부분들을 잘 보존하기. 너무 많이, 빨리 변해간다. 
변화하지 않아도 좋은 것들을 그대로 두는 인내가 필요하다."
_ 2012년 3월, 안상수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의 페이스북 그룹 질문 
   '디자인이 서울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답변 중 


그 "인내"가 장성환만의 디자인 철학인가요?
그렇죠.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들은 구태여 새로운 걸 덧대지 말고 그대로 두자는 거죠. 뭔가를 작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일만이 디자인은 아니거든요. 디자이너 스스로 ‘이 디자인이 왜 필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해요. 원점을 생각해보자는 뜻이죠.

디자인의 원점이라···
컵 같은 경우는 굉장히 많은 형태로 변화해왔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잖아요. 반면에 우산처럼 그 형태가 그대로인 것도 있죠. 탄생 당시부터 완벽한 구조를 가졌달까. 바퀴도 마찬가지예요. 바퀴를 더 이상 어떻게 개선하겠어요? 물론 타이어를 갈아 끼우거나 공기를 주입하는 방식 등은 발전을 했죠. 하지만 바퀴의 둥근 구조 자체는 그대로잖아요. 왜 둥근가? 굴러가기 위해서! 이게 바퀴 디자인의 원점이에요. 이런 원점을 깊이 고민해봐야 해요. 그런 고민이 없으면, 디자인은 그저 데코레이션 수준에 머물고 말죠.

최근엔 어떤 작업들을 했나요?
한 주유회사의 윤활기유(base oil) 생산 및 수출 과정을 인포그래픽(Info Graphic)으로 작업했는데 무척 흥미로웠어요. PPT로 10여 장 되는 정보들을 인포그래픽 한 장에 모두 담은 거죠. 저 역시도 이 작업을 통해 윤활기유란 것에 대해 배울 수 있었고요. 인포그래픽이란 시각디자인의 정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수십 장의 텍스트 정보를 간결하고 명확한 그래픽으로 바꿔주는 일이니까. 해당 분야의 전문 지식이 없는 대중들을 직관적으로 이해시켜야 하는 만큼 어려운 작업이기도 하죠. 하지만 203 자체적으로 인포그래픽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놓은 상태예요. 이번 작업을 계기로 인포그래픽 프로젝트를 활발히 진행할 계획이에요. 

연합뉴스의 그래픽뉴스팀 창설 멤버이기도 하죠? 그때부터 인포그래픽에 대한 노하우를 축적해놓은 건가요?
1990년대 초반에 연합뉴스가 그래픽뉴스팀이란 걸 만들기로 결정했어요. 인포그래픽으로 뉴스를 보도하는 전문 부서이죠. 저는 그때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일했는데, 연합뉴스 측의 제의를 받고 그래픽뉴스팀 창설에 합류하게 됐어요. 초반엔 미국의 AP통신, 프랑스의 AFP통신, 독일의 로이터통신 등 해외 외신사 그래픽뉴스팀의 사례 연구를 진행했죠. 일본 교도통신을 직접 방문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연합뉴스 그래픽뉴스팀을 만든 뒤엔 동아일보가 발행하는 과학잡지 <과학동아> 아트디렉터로 일하면서 인포그래픽 작업을 이어갔죠.


▲ 203에서 최근 작업한 국내 주유회사의 인포그래픽


▲ 장성환이 아트디렉터로 일했던 『과학동아』에 실린 인포그래픽

"여기(홍대앞)엔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뭔가가 있다."
『시사저널』 인터뷰(2011) 중


그 "뭔가"가 뭔가요?
뭔가를 저지르려 하고, 만들려 하고, 영향을 끼치려 하는 시도들이죠. ‘홍대앞’이란 공간엔 늘 새로운 시도와 실험 들이 꿈틀대고 있어요. 크고 작은 페스티벌, 홍대 놀이터나 길거리에서 노래하는 친구들, 공연장에서 연주하는 친구들, 북카페나 술집에 앉아 글 쓰는 이들. 이 모두가 바로 그 ‘뭔가’이죠. 

홍대앞 문화잡지 『스트리트 H』를 매달 무가지로 발행하는 이유도 그 "뭔가" 때문인가요?
2009년 6월에 창간했으니까, 3년째 매달 홍대앞 소식을 업데이트해온 셈이에요. 그 ‘뭔가’에 대한 애착이 없었다면, 이렇게 지속적으로 못 했겠죠. 홍대앞처럼 대규모 축제가 많고, 곳곳에서 항상 전시회가 열리고, 출판사들이 포진해 있는 지역이 그리 흔치 않아요. 세계 어느 동네를 봐도 홍대앞 같은 곳을 찾기 힘들죠. 이런 훌륭한 공간의 특색을 기록하고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래서 자비를 들여가며 『스트리트 H』를 만들고 있는 거죠.

홍대앞 '타우니 맵(Townee Map)' 역시 다달이 업데이트되던데요. 
그 수많은 장소와 지리 변화를 일일이 다 확인하는 건가요?
네. 직접 지도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실시간으로 기록해놓아요. 저도 돌아다니고, 203 식구들도 함께 발품을 팔고. 지도라는 게 그저 길 찾기에 필요한 위치 정보만은 아니거든요. 시간이 지나면 ‘존재 정보’가 되니까. 예를 들어, 이번 달에 문을 닫은 카페는 다음 달 지도에선 볼 수 없겠죠. 하지만 옛 지도들엔 그 카페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표시되어 있잖아요. 바로 존재 정보이죠. 이런 존재 정보들은 훗날 귀중한 사료로 활용될 수 있어요. 황색잡지인 『선데이 서울』이 지금은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인문학 자료로 쓰이잖아요. 스트리트 H도 10년쯤 쌓이고 나면 논문 자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 매달 홍대앞 문화 소식을 전해주는 『스트리트 H』


▲ 다달이 업데이트되는 홍대앞 '타우니 맵'

"홍대앞, '밤 문화'만 있는 건 아니다."
『머니위크』 인터뷰(2012) 중


홍대앞 문화가 예전의 순수성을 잃었다는 내용의 보도가 심심치 않게 나오던데요.
홍대의 긍정성을 만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자꾸 선정적인 기사들이 나오니 정말 안타까워요. 왜 대낮에 취재를 안 하는지 모르겠어요. 굳이 금요일 밤에 홍대앞에 와서는 술 취한 여자들 사진을 찍고, 그걸 갖고 ‘홍대 문화가 퇴폐와 향락으로 가고 있다’는 식의 기사를 내보내죠. 금요일 밤이면 홍대앞뿐만 아니라 어느 곳에서라도 술 취한 사람들은 볼 수 있잖아요. 문화라는 것이 어떻게 흠 한 점 없을 수 있겠어요. 술 취해 토하는 모습도 있고, 정반대인 모습도 다 섞여 있는 거지. 그런 걸 간과하고 계속 옐로우적인 측면만 강조하니까 답답한 거죠.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답답함인 거죠?
문화라는 게 무슨 무균실 같아야 한다고 생각들을 하는 것 같아요. 절대 아니거든요. 그런 건 민속촌의 모습이죠. 문화는 살아 있는 거예요. 저는 문화가 부패와 발효 사이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부패해 버려지는 게 있는가 하면, 발효해 숙성되는 것도 있는 거죠. 술, 고추장, 된장처럼.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이것을 조금만 바꾸어 보면 마치 바코드를 위한 시 같다.
'내가 체크해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여러 개의 선들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체크해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의미가 되었다.'"
_ 웹진 『CRESUMER』 연재 칼럼 「장성환의 이미지 토크」 3회(2007) 중


오래전, 바코드에 관해 쓴 컬럼의 도입부가 인상적이었어요. 김춘수 시인의 시 ‘꽃’을 인용했더군요. 
디자인 말고도 문학, 영화 등 인문학 장르에 두루두루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요.
많이 읽고, 많이 쓰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어릴 때 교회 회지도 만들고, 글짓기 대회 나가서 상 받은 적도 있고. 대학 시절엔 학보사 문화부장이었어요(장성환은 홍대 신문사 기자 18기로 활동했다). 콘텐츠 기획과 편집, 인터뷰, 한 칸 만평과 네 칸 만화 연재 등을 맡았죠. 그러면서 자연스레 글쓰기와 독서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특히나 인문학이란 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기본 관점을 갖게 해주니까 더 중요시 여겼죠. 디자이너로서 도약하게 되는 계기도 이 인문학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저 직업으로서의 디자인이냐, 아니면 자신만의 관점을 담아낸 창조적인 디자인이냐, 이렇게 갈라지는 지점이 인문학 공부가 쌓인 양에서 비롯되는 거죠. 테크닉은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져요. 하지만 자신만의 관점을 확립하는 일은 저절로 되는 게 아니거든요. 

학보사에서의 경험이 동아일보나 연합뉴스 등 언론사 아트디렉터 활동에도 도움이 됐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신문을 만들어본 경험이 있으니까요. 기자들이 어떻게 취재해 기사를 쓰는지, 편집은 어떻게 하는지 등등. 이런 과정들에 대한 사전 지식이 있으니까 도움이 됐죠.

그렇다 해도 실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있었겠죠?
언론사에서는 기자들이 클라이언트예요. 물론 독자들이 있긴 하지만, 1차적으로는 기자들과 소통해야 하니까. 그때만 해도 ‘미대 졸업생들은 머리가 나쁘고 책을 안 읽는다’라는 선입견이 강했거든요. 기자들이 디자이너들을 뒤에서 무시하는 경우도 많았죠. 그래서 그때부터 ‘디자이너는 디자인도 잘해야 한다’란 생각을 갖게 됐어요. 책도 많이 읽고, 아는 것도 많아야 하고, 그러면서 디자인도 잘해야 한다는 뜻이죠. 당시 기자들의 가장 큰 불만이 ‘왜 디자이너들은 기사를 안 읽고 레이아웃을 하느냐’였어요. 사실 당연한 거잖아요. 당연한 걸 당연하게 안 했던 시절이었죠. 그래서 저는 기자들과 기사 내용에 관한 의견을 자주 주고받았어요.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짚어주기도 하고. 그런 과정들 속에서 기자들과의 소통이 원활해질 수 있었죠.

후배 디자이너나 학생들에게도 독서를 강조하시겠군요.
물론이죠. 디자인 교과서뿐만 아니라 인문학 서적을 읽으란 얘기를 많이 해요. 특히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읽고, 제프 콜빈의 <재능은 어떻게 단련되는가>를 이어서 읽으라고 추천해주고 싶어요. <재능은 어떻게 단련되는가>의 요약본 같은 책이 바로 <아웃라이어>거든요. 두 책을 함께 읽으면 좋죠. 이 책들엔 자기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와요. 의미심장한 지적이죠. 젊은 디자이너들 중에는 1~2년쯤 일하고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러고는 여행을 가요. 자기 블로그에 ‘행복해요~’ 하면서 여행 후기랑 사진도 올리고. 그러다가 통장 잔고가 떨어지면 재취업하고. 지구력을 발휘해서 자기 커리어를 쌓아가야 하는데, 이렇게 툭툭 끊어지니까 너무 안타깝죠. 그래서 요즘엔 <아웃라이어>의 디자이너 버전을 쓰고 싶단 생각을 많이 해요. 한국 디자인계의 대표주자들이 어떻게 지금의 수준으로 성장했는가,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려면 어떤 경험들을 얼마큼 쌓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아주 구체적이고 명확한 방법론을 제시해주고 싶어요. 그런 책이 한 권쯤 있으면 방황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 베네통에서 발행하는 잡지 『COLORS』 한국어판 창간호. 203에서 디자인 작업을 했다.


▲ 2008년 한글날, 홍대앞 상상마당 아트마켓에서 열린 특별전 <한글, 시간에 말을 걸다>에 참석한 장성환


▲ 203에서 편집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는 인테리어 잡지 『CASA LIVING』

▶▶ <아트디렉터 장성환의 작업실>도 구경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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