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읽자이너] #7 『정병규 사진 책』2021.10.27



한 달 한 권
1 제목 2 차례  3 서문
딱 세 가지만 속성 소개

일단은 1, 2, 3만 읽어보는 디자이너
 123 읽자이너 

 #7 『정병규  사진 책』 


한 달 한 권, 디자이너들이 일독하면 좋을 디자인·미술·인문 분야의 양서를 소개한다. 『타이포그래피 서울』 에디터가 직접 구입하여 읽은 책들이 그 대상이다. 서론―본론―결론 꼴을 갖춘 서평의 형식이 아니라, 1제목―2차례―3서문 이렇게 딱 세 가지만 다룬다. 그래서 코너명이 「123 읽자이너」다. 일곱 번째 책은 ‘대한민국 1세대 북 디자이너’ 정병규의 사진 책(photobook) 디자인을 총람한 『정병규 사진 책』(정병규 지음, 사월의눈, 2021)이다.


ⓒ typography seoul

1  제목 + 2 차례


『정병규 사진 책』이라는 제목 자체가 워낙 직관적이므로 따로 해설을 첨언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책명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차례―출판사 사월의눈이 선별한 정병규의 사진 책 디자인 목록, 그리고 부록―를 바로 펼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좀더 활짝 열어 젖히기 위해서는 디자이너 정병규에 대하여, 그리고 왜 ‘사진 책’인지에 대하여 알아둘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 정병규를 수식하는 가장 일반적인 표현은 ‘대한민국 1세대 북 디자이너’다. 하지만 정병규 본인은 ‘출판 디자이너’라는 호칭으로 자신을 정의한다.* 정병규의 바이오그래피 출발점은 1970년대 출판계다. 그는 1975년 『월간 소설문예』 편집부장과 민음사 편집부장을 지냈고, 1977년 출판사 홍성사를 설립·운영하기도 했다. 홍성사는 당시 4×6판이 주류였던 국내 출판계에 최초로 신국판을 도입하며 주목받았다.** 또한, 홍성사가 만든 600쪽 분량의 세계사 서적들은 이례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70년대 홍성사의 존재는 독보적이었고, 이를 방증하는 말이 이른바 ‘홍성사 시대’다. 그때의 정병규는 문학평론가 황현산, 소설가 김원우, 시인 최승자 등 문인들과 함께 파격과 실험을 해나가며 당대 한국 출판 생태계에 신선한 토분(土粉)을 제공했다.
* 「한국 책의 숨쉬는 역사, 출판 디자이너 정병규」, 『씨네21』 560호, 2006. 7. 4. ~ 7. 11. ― 인터뷰어 김혜리 기자의 “출판 디자이너, 책 디자이너, 북 디자이너 중에 어떤 호칭이 좋다고 보세요?”라는 질문에 정병규는 “출판 디자이너, 즉 퍼블리케이션 디자이너가 맞죠. 교과서적으로 말하면 출판 디자인 범주 아래 책, 잡지, 신문, 작은 인쇄물(small printed matters)이 하위 장르로 있고 요즘 다섯 번째로 웹 디자인이 추가되는 거예요. 나는 한 디자이너가 책, 잡지, 신문을 모두 만들 수 있고 또 우리 사회가 그런 주문을 하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답했다. 이 인터뷰 기사는 2008년 출간된 김혜리 기자의 인터뷰집 『그녀에게 말하다: 김혜리가 만난 사람』(씨네21북스)에도 수록돼 있다.
** 『시사저널』의 다음 기사를 참고 ― 「한국 출판 문화 개혁 이끌어온 ‘산 역사’」, 1996. 8. 8.

정병규 바이오그래피 시즌 1(1970년대)을 ‘파격과 실험의 출판인’으로, 시즌 2(1980년대)를 ‘출판인, 북 디자이너가 되다’로 명명하면 어떨까. 『정병규 사진 책』이 기술한 정병규의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의 약력을 ‘시즌 2’ 시놉시스로 읽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제13회 동경 유네스코 편집자 트레이닝코스를 수료(1979)한 후에는 북 디자인을 하나의 장르로 인식하며 이를 독립적인 디자인 영역으로 개척해 나갔다. 프랑스 파리의 에꼴 에스띠엔느(École Estienne)에서 타이포그래피를 공부(1982~1983)하고 돌아온 후, 1984년에 ‘정병규디자인’을 설립해서 지금까지 출판 디자인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정병규는 1977년부터 1989년까지 민음사의 북 디자인을 아트디렉팅했으며 이 외에도 많은 출판사의 책을 기획·편집·디자인했다.
― 『정병규 사진 책』 504쪽

그렇다면 왜 사진 책인가. 『정병규 사진 책』은 정병규의 수많은 작업들 중 왜 ‘사진 책 디자인’에 주목한 걸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적절한 해제는 정병규의 말들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진 책이야말로 표지 디자인만이 아니라 이미지까지 총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북 디자인의 실체이다. 이것이 내가 사진 책에 주목했던 이유이다. 
활자 책은 활자라는 단위가 이미 정해져 있다. [···] 그런데 이미지는 그런 활자적인 단위가 없다. 그것이 이미지 책의 특징이다. 이미지는 크기가 자연스럽고 놓이는 위치나 크기가 정해진 것이 없다. 활자는 이미 활자 간의 관계가 타이포그래피적 문법으로 정해져 있는데 이미지는 그렇지 않은 새로운 원리와 문법을 요구한다. 다시 말해서 시각적인 플롯을 요구한다. 그래서 생기는 것이 새로운 시각적인 서사성이다. 사진 책은 이러한 이야기(visual plot)를 가져야 한다.
··] 사진 책은 문자와 이미지 혹은 이미지와 이미지 간의 관계 및 사진가와의 관계 속에서 사진 책이 살아가는 책이라는 공간, 즉 또 하나의 세계가 되는 것이다.
― 『정병규 사진 책』 479쪽, 부록: 정병규의 글 「사진 책 만들기에 관하여」

요컨대 『정병규 사진 책』은 이런 책이다. “사진 책이야말로 표지 디자인만이 아니라 이미지까지 총체적으로 다룰 수 있는 북 디자인의 실체”라 말하는 대한민국 1세대 북 디자이너의 대표작들을 통하여 “책이라는 공간, 즉 또 하나의 세계”의 구조와 그 아름다움을 들여다보는 책. 이제 책문(冊門)을 활짝 열어 그 세계로 입장할 차례다.

감사의 말 ― 정병규

추천사 ― 이영준(기계 비평가)

사진 책
『김중업: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
『한국의 굿』
『한일교류이천년』
『흐르는 섬』
『침묵의 뿌리』
『광복 40주년』
『우리江山』
『한국인의 놀이와 제의』
『경주남산』
『경주남산 흑백판』
『누드』
『사진 고대학생운동사 1905~1985』
『밝은 방』
『한국의 탈 & 한국의 탈춤』
『환희와 우정: 미·소 스포츠 사진전』
『나무』
『한국, 그 내면과 외면』
『생각의 바다』
『백남준』
『CHONG JAE-KYOO』
『신체 또는 성』
『한국의 부채』
『아시아의 하늘과 땅』
『KOREAN HERITAGE SERIES』
『모든 앙금』
『종이로 보는 생활풍경』
『짧은 연대기』
『한국의 굿 ― 만신들 1978~1997』
『영화: 나를 찾아가는 여정』
『젊은 건축가상 2008』
『민현식』

에세이
사유와 상상의 확장을 위한 이미지의 질서 ― 송수정(사진 기획자)
큰 나무들 아래서 놀다 ― 최재균(출판인, 포토넷·포노·걷는책 대표)
선생은 아직도 앉는 법을 모른다 ― 김현호(매거진 『보스토크』 발행인, 사진 비평가)
시각과 언어의 폴리오, 정병규의 역사적 의미 ― 박상순(시인, 민음사 대표이사 역임: 2005. 6. ~ 2006. 3.)

부록
정병규 강의록 ― 이미지 다루기의 19가지 법칙
정병규 글 ― 사진 책 만들기에 관하여
정병규 인터뷰 ― 사진, 책으로 보다
고유명사(index)

편집 후기 ― 전가경(사월의눈 공동대표, 디자인 저술가)

정병규 약력



3  서문 겸 추천사


1950~1960년대 올드 재즈 LP를 들어본 이들은 ‘인트로’라는 트랙이 익숙할 것이다. 싱어 혹은 밴드의 본격적인 연주 트랙에 앞서, 일종의 진행자가 등장해 해당 뮤지션들을 소개하는 구간이 바로 인트로다. 미국의 1세대 블루스 싱어 마 레이니(Ma Rainey)를 다룬 영화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에 이 인트로 트랙 녹음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책의 추천사는 재즈 음반의 인트로 트랙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지면에 녹음/인쇄된 저자의 생각이 재생되기/펼쳐지기 전,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 책과 작가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하는 진행자의 소개 멘트가 나오는 것이다. 철학자 질 들뢰즈가 일찍이 주저 『천 개의 고원』을 두고 “오디오에 음반을 걸어놓고 듣듯이 읽어달라”* 말한 적도 있는바, 책을 음악/음반에 비유하는 게 그리 과한 수사는 아닐 것이다.
* 『노마디즘 1』, 이진경 지음, 휴머니스트, 2002, 0장 1. 「『천의 고원』, 혹은 철학적 음악?」에서 재인용

『정병규 사진 책』 인트로 트랙의 마이크로폰 앞에는 기계 비평가 이영준이 섰다. 「『정병규 사진 책』은 디자이너에 대한 최고의 오마주」라는 제목으로, 정병규가 디자인한 사진 책 『경주남산』에 관한 이야기로 이영준은 인트로를 시작한다. 이 트랙을 스킵(skip) 없이 감상한 뒤에, 천천히 정병규라는 마에스트로의 명반 『정병규 사진 책』을 끝까지 감상해보시기를 권한다.

『경주남산』이 사진가 강운구와 출판인 이기웅의 노력이 합해져서 만들어진 것은 알아도 디자이너 정병규의 노력으로 지금과 같은 모양새를 갖춰 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 사진가 강운구가 경주남산을 사진에 잘 담기 위해 필생의 노력을 기울였다면 정병규는 그런 강운구의 노력을 잘 담아내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주남산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필생의 노력을 기울였다. 이름도 없는 석공이 새긴 남산의 마애석불들은 희미한 음각으로 새긴 것이 많아서 좋은 빛이 비치지 않으면 그 형상을 제대로 보여주기 힘들다. [···] 정병규는 그 빛들을 책에 살려내기 위해 어떤 사진은 여백을 둬서 아담하게, 어떤 사진은 호방하게 펼친 페이지로 배치했다. 그리고 사진들의 배치는 전체적인 리듬감을 살려 우두운 것들이 몇 장 나오다가 점차로 밝아지며 하이라이트가 많은 사진으로 옮겨가고 다시 어두워진다. 그래서 이 책 전체는 소리들이 커졌다 작아지고 높았다 낮아지는 리듬의 풍부한 변화를 담고 있는 한 편의 교향곡을 보는 것 같다.
― 『정병규 사진 책』 11쪽, 이영준의 추천사 「『정병규 사진 책』은 디자이너에 대한 최고의 오마주」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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