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한동훈의 글자발견」 #1 돌아와요 부산항에2022.03.31




 발로 걸으며 다시 볼 견[見], 일상의 글자를 재.발.견. 
폰트 디자이너 한동훈의 글자 찾기 여행
 부산항 ― 광복동 ― 남포동 ― 대청동 ― 보수동 

               

부산역 광장에 내려 뒤돌아서니 넓은 부산항이 눈에 들어온다. 부산항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부산과 부산항을 상징하는 많은 특성이 있겠지만 올드 K팝에 관심이 많은 필자는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우선 떠오른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가요 역주행의 원조다. 그런데 원곡은 다른 가수가 불렀다. 1970년 김해일 버전으로 맨 처음 선보였을 때의 제목은 「돌아와요 부산항에」였다. 충무는 1995년 통영으로 바뀐 도시. 지금과는 가사도 템포도 다른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별 인기를 얻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김해일은 군복무 중 휴가를 나왔다가 197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날 아침 명동 대연각호텔에서 발생한 화재 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하지만 이 노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작곡가 황선우는 조용필에게 노래를 넘겼다. 지명도 충무에서 부산으로 바꾸고 가사도 부산의 명소로 바꿨다. 조용필이 부른 버전은 1972년 『조용필 스테레오 힛트앨범 제1집』에 수록됐다. 통기타 반주를 바탕으로 한 미성이었지만 이 버전도 반응이 없었다.

다시 4년이 흐른 1976년. 조용필은 킹레코드에서 독집 앨범을 내기로 했다. 그런데 박성배 킹레코드 사장이 ‘뽕짝’도 하나 넣기를 원했다. 묵혀뒀던 트로트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다시 떠올랐다. 로커였던 조용필은 자기가 추구하는 음악도 아니고 이미 여러 번 망한 이 노래가 썩 마음에 들진 않았다. 일단 리메이크는 했다. 원곡의 늘어지는 트로트풍 멜로디를 빠른 디스코 리듬으로 편곡해 앨범에 다시 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산에서부터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행운도 겹쳤다. 1975년 9월 재일동포 모국방문단이 막 시작되어 부산항에 입항하는 시점이었다. 이것을 노린 조용필은 원곡 가사의 ‘내 님아’를 ‘내 형제여’로 바꿔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라고 노래했다. 애인을 그리는 후렴구가 혈육을 그리는 가사로 바뀐 것이다. 이것이 적중했다. 히트곡은 서울에서 출발해 아래로 내려간다는 통념을 깨고 6년을 버틴 끝에 부산에서 인기가 휘몰아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무명 가수였던 조용필은 이 한 곡으로 대형 스타로 발돋움, 1977년 대마초 파동으로 다시 침묵하기 전까지 잠깐이지만 전국적인 인기를 누렸다. 1981년 여름 3집 발표회를 겸해 해운대 백사장에서 열린 비치페스티벌에서 조용필은 말했다. “부산은 저의 제2의 고향입니다”. 그 노래비가 1994년 봄 해운대 백사장 한편에 세워졌다.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본격적으로 히트하기 시작한 1976년 앨범 재킷 레터링은 세로쓰기로 되어 있어 가로 폭이 세로 폭보다 넓은 평체 스타일이다. 가로획이 얇고 세로획이 비교적 두꺼운, 획 대비가 있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돌’, ‘부’, ‘산’ 등에서 보이는 둥근 곡선은 1970~1980년대 재킷 레터링에서 적지 않게 보이는 유형이지만 붉은 재킷 아래 타이틀 곡이 가진 절절한 뉘앙스를 잘 표현해 준다.



1976년 서라벌레코오드사에서 발매된 『돌아와요 부산항에 / 너무 짧아요』


광복동 · 남포동 일대 산책


부산 도시철도 1호선 남포역에서 내려 자갈치역 방면으로 걸었다. 비 내리는 남포동 상가 골목은 어두웠다. 거리를 지나는데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이 스쳐지나간다. 그중 몇 분이 마치 필자가 지나가길 기다렸다는 듯 한마디한다. “한 35년 전에는 최고의 번화가였는데”, “맞어 맞어”, ······. 유동 인구가 적지는 않았다. 그러나 건물로 들어가기보다 다른 곳을 향해 걷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길이 넓은 쪽으로 나오니 가게에 삼삼오오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점점 눈에 띄기 시작했다.

BIFF 광장 초입에서 고개를 들면 큰길가에 위치한 남포문고가 보인다. 1988년 개업한 남포문고는 문우당서림과 함께 부산의 대표적인 향토 서점으로 알려져 있다. 문우당서림이 규모를 축소한 지금은 거의 유일한 중형 서점이다. 출판계의 부진으로 인한 오프라인 서점 운영의 어려움, 더욱이 수도권에 비해 주목도가 높지 않은 지방 서점이라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하에 ‘冊(책)138’이라는 문화 공간까지 따로 운영하는 등 지역 사회에 나름 활발한 기여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부는 전체적으로 깔끔했으며 확 튀는 밝은 녹색 간판과 레터링이 흐린 날씨 속에서 더욱 시선을 잡아끌었다.

남포문고의 로고타입은 기존 레터링의 공식과 달라 독특한 인상을 풍긴다. 획과 획이 이어지는 스타일은 일반적으로 모서리를 굴린 고딕 형태에 중성·종성을 붙인 유형이 되기 쉬운데, 이 로고타입은 획을 맺고 끊은 포인트에서 기존의 공식(?)을 탈피해 새로운 느낌을 준다. 오른쪽 위를 터 놓은 ‘남’의 종성 미음[ㅁ]과 오른쪽으로 상승하다가 아래로 뚝 떨어지며 중성 가로보와 연결되는 ‘포’, ‘남’과는 달리 오른쪽 아래를 터 놓은 ‘문’의 초성 미음이 그렇다. 전체적으로 짧은 문자열인데도 그 속에서 많은 특이점을 집어낼 수 있다.

보통 전국을 대상으로 하는 프랜차이즈 수준 점포가 아니라면 아이덴티티를 리뉴얼하거나 장소를 이전할 때 간판을 기성 폰트로 바꾸는 경우가 많다. 예전에 존재했던 많은 레터링이 그렇게 폰트로 바뀌었다. 그런데 남포문고는 폰트로 바뀌기는커녕 독자적인 레터링을 건물 안팎 곳곳에 더 크게 배치해서 존재감을 발산한다. 마치 어디까지나 지역색을 지켜 나갈 것이라는 굳은 의지를 보는 듯하다.


남포문고 간판 | 사진: 한동훈
― 지하철 1호선 남포역 인근에 위치해 있었다가 2018년 지금의 자갈치역 방면으로 이전했다 

부산 중구 남포동·신창동 일대에 넓게 위치한 국제시장은 부산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으로 꼽힌다. 처음에는 많은 시장이 그렇듯 제대로 된 명칭은 없었지만 이후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해외 양품, 수입 밀수품, 전자제품, 그리고 미군 물품까지 취급하게 되면서 ‘국제’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한다. 광복 이후 많은 문화와 물자가 교차했던 부산 원도심에서도 그 특징이 손꼽히게 드러나는 공간인 셈이다. 인터넷이나 각종 마트 등 물건을 구할 수 있는 경로가 많아진 지금은 위상이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많은 가게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제시장은 이런 상징성 때문에 질곡의 한국 현대사를 소시민의 시각으로 다룬 황정민·김윤진 주연의 영화 〈국제시장〉(2014)에서 주요 무대로 쓰였다.

국제시장은 물건뿐 아니라 신구 서체도 공존하는 공간이다. 서울의 을지로3가 공업 지대처럼 붓으로 쓰거나 아크릴을 잘라 수작업으로 만든 간판 글자를 간직한 곳이 아직 많다. ‘해동기공사’ 간판은 그런 손의 흔적을 잘 간직한 시각 유산이다. 그런가 하면 시장의 다른 편에는 투박하게 만든 옛 손글씨 조형을 보고 디자이너가 만든 서체(배달의민족 연성체·도현체)를 현장 상인들이 다운로드하여 자기 가게의 사인물로 적용하는 역전 현상이 일어난 곳도 있다. 복고풍 무료 서체가 늘어남에 따라 이런 역전 현상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거대한 도시 속에서 마치 물의 순환처럼 글자의 순환이 나타나는 것이다.


국제시장에서 만난 ‘해동기공사’ 손글씨 간판 | 사진: 한동훈


복고풍 무료 서체를 활용한 간판들이 보인다 | 사진: 한동훈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한글 자소 형태는 확장성이 뛰어나다는 장점과 자소 간 혼동의 여지가 많다는 단점을 동시에 품고 있다. 근처 대청동의 한 병원 간판이 눈에 띈다. 두꺼운 헤드라인용 고딕 속 ‘운’의 초성이 이응[ㅇ]인지 미음[ㅁ]인지 헷갈린다. 더군다나 병원 진료 분야에 실제로 대장·항문이 포함되어 있어 혼란이 가중된다. ‘성’, ‘신’, ‘항’, ‘외, ‘과’는 같은 서체인데 ‘운’의 이응만 원래 형태가 아니라 미음의 모서리를 둥글린 모양으로 집어 넣었다. 옆쪽 세로쓰기로 된 간판에서도 ‘운’만 다른 서체로 되어 있다. 아무리 봐도 짐작이 가지 않아 결국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확한 상호를 알 수 있었다. 이는 한글 자소 변별의 어려움이 가장 극적인 쪽으로 나타난 사례다.


대청동에 자리한 ‘성신항문외과’ 간판 | 사진: 한동훈
― 필자는 이 간판을 ‘성신항외과’로 읽었는데 여러분은 어떠실는지 

보수동 책방 골목 앞쪽에 위치한 한 서점 간판. 여기서 시옷[ㅅ], 지읒[ㅈ] 자소 디자인의 일관성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시옷을 그리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➀왼쪽 빗침을 먼저 긋고 그보다 작은 오른쪽 빗침을 나중에 긋는 방법이 있고, ➁양쪽을 대칭 형태로 아래로 동시에 떨어지도록 그리는 방법이 있다. 시옷, 지읒, 치읓이 같은 계열로 분류되니 보통은 방향을 정하면 같은 모양으로 획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서점’을 보면 시옷과 지읒이 미묘하게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시옷은 첫 번째 방법, 지읒은 두 번째 방법으로 만들어져 있다. 지금 그대로도 좋지만 만약 일관성을 원한다면 시옷 역시 지읒처럼 통일하면 더욱 무난한 둥근고딕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현대 한글 폰트에서 자연스러운 쓰기 습관이 크게 반영된 명조체는 ➀의 방식이 많고 도구로 작도한 느낌이 크게 반영된 고딕체는 ➁의 방법이 많다. ➁는 공간 배분을 규칙적으로 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동아서적 간판 | 사진: 한동훈



‘남포문고’ 로고타입 해석과 파생


‘남포문고’ 로고타입은 위에서 살펴보았듯 짧지만 독특한 특징을 지닌,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글자다. 이 로고타입이 지닌 DNA를 다시 한 번 짚어보자.



  · · ·  전체 글자틀은 받침이 있는 글자와 없는 글자의 높이 편차가 심한, 탈네모틀에 가까운 모양을 하고 있다.
  · · ·  모서리를 둥글린 라운딩이 획 중간중간 들어간 고딕 형태다.
  · · ·  가로모임꼴 받침글자의 중성 가로줄기[ㅏ]가 초성의 아래쪽으로 정렬되어 있다.
  · · ·  ‘남’ 종성 미음[ㅁ]의 오른쪽 상단이 열려 있다. 반면 ‘문’ 초성 미음은 오른쪽 하단이 열려 있다. 이로써 초성과 종성의 자소 형태를 달리 한다는 법칙을 세울 수 있다.
  · · ·  ‘포’ 초성 피읖[ㅍ]의 두 세로획이 왼쪽은 수직으로 서 있고 오른쪽은 살짝 사선으로 기울어 있다. 평행한 두 줄기가 이런 배치를 이룬다는 특성은 다른 가로·세로줄기에서 응용할 수 있다.
  · · ·  ‘포’ 아래쪽 가로획이 오른쪽으로 상승하다가 꺾어지며 중성 가로보와 연결된다.
  · · ·  ‘문’ 종성 니은[ᆫ]이 위쪽 중성 가로보와 붙어 있다.
  · · ·  ‘고’ 초성 기역[ㄱ]이 아래쪽 중성 가로보와 붙어 있다. 보통 ‘그’에서 둘이 붙을 수는 있어도 ‘고’처럼 세로기둥 하나가 추가되면 기역과 가로보는 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여기서는 둘 다 붙어 있다.
  · · ·  낱자의 위치는 가상의 선을 그었을 때 맨 위쪽에 정렬된, 윗선 정렬이다.



DNA를 분석했다면 한글 원리에 의해 다른 낱자도 만들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부산광역시 남포동과 광복동의 글자발견’이라는 견본 문자열을 파생해 보았다. 주요 글자 파생 방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전체 낱자의 글자폭은 원본의 느낌을 살려 넉넉하게 설정했다.

· · ·  [부] · · ·  받침이 없는 낱자인 만큼, 마찬가지로 낱자가 없는 ‘포’, ‘고’를 기준으로 전체적인 낱자 위치를 정했다. 초성 비읍[ㅂ]의 넓이는 ‘포’의 피읖[ㅍ]을 기준으로 정했다. 세로기둥 양쪽 아래에 라운딩을 적용하고, 초성 미음[ㅁ]에서 힌트를 얻어 오른쪽 하단을 열어 놓았다. 중성 가로보는 ‘문’에서 가져왔다.

· · ·  [산] · · ·  원본 로고타입에는 자소 시옷[ㅅ]이 없다. 따라서 많은 시안들이 나올 수 있는데, 사선 흐름이 거의 없고 수직·수평이 강조된 원본의 기조를 따라 한쪽 획만 기울인 시옷으로 디자인했다. 바깥쪽에 전부 각을 주어 마무리하면 지나치게 딱딱해 보일 수 있으니 왼쪽 모서리에 라운딩을 주어 중화시켰다. ‘남’을 보았을 때 중성 [ㅏ]와 연결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가독성에 지장을 줄 수 있어 획이 수평으로 뻗는 니은[ㄴ], 디귿[ㄷ], 리을[ㄹ], 피읖[ㅍ] 등에서만 중성과 연결되도록 하고 시옷이나 이응처럼 애매한 자소가 오면 중성과 분리하는 규칙을 만들었다. 디자이너는 해석 방향에 따라 규칙을 새로 만들 수 있다. 그 규칙을 전체 낱자에 일관되게 적용하기만 하면 된다.

· · ·  [광] · · ·  섞임모임꼴 중성이라는 변수가 등장했다. 초성 기역과 중성 [ㅘ]는 ‘고’의 분위기를 따라 서로 붙였다. ‘남’의 분위기를 따라 중성 [ㅏ]의 가로줄기는 이음보와 서로 붙였다. 원본 로고타입에는 자소 이응[ㅇ]이 없다. 따라서 많은 시안들이 나올 수 있는데, 미음과 혼동될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네모꼴에 가깝게 디자인하는 것이 전체적인 분위기에 좋다고 판단했다. 다만 바깥쪽 모서리의 라운딩 값은 평균보다 크게 주어 이응으로서 아이덴티티를 강조했다. 안쪽 모서리에도 미세한 라운딩을 주어 차별화했으며 오른쪽 위를 열어서 종성 미음과의 일관성을 만들었다.

· · ·  [역] · · ·  초성 이응은 ‘광’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가져왔다. 중성 [ㅕ]의 평행한 가로 곁줄기는 ‘포’ 피읖의 한쪽만 기울어진 세로기둥에서 모티브를 얻었다. 어떤 디자인 요소는 정확히 그 위치에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비슷한 속성을 가진 자소에는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하다. ‘역’ 종성 기역은 다른 낱자와 마찬가지로 중성과 붙여 주었다.

· · ·  [복] · · ·  초성 비읍과 중성 [ㅗ]가 만나는 부분은 ‘포’에서 가져왔다. 앞서 ‘부’에서 오른쪽 하단이 열려 있던 것과 더불어 일관성 있는 체계를 구축한 셈이다. 오른쪽으로 상승하다가 아래로 뚝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중성과 연결되는 부분이 포인트다. ‘동’에서 초성 디귿과 [ㅗ]를 연결한 것도 같은 원리다.

· · ·  [자] · · ·  초성 지읒[ㅈ]은 시옷을 바탕으로 하면 쉽게 해결될 것 같지만, 자칫 심심해질까 싶어 나름의 포인트를 주었다. 위쪽 가로획과 아래쪽 갈라지는 부분 사이를 띄어 준 것이다. 어차피 획을 띄고 열어 주는 것이 로고타입의 아이덴티티라 위화감은 적다. 원본의 요소를 파악했다면 다른 방향으로도 얼마든지 응용이 가능하다. 띄어 준 정도는 ‘남’에서 종성 미음이 열려 있는 정도에 맞춤으로써 일관성을 주었다.

나머지 글자도 설명을 보면서 이유를 추측해 보거나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석, 응용한다면 좋은 파생 결과물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광복동·남포동으로 대표되는 부산 원도심 산책은 선선한 바닷바람과 함께라 더욱 즐거웠다. 다음엔 좋은 사람들과 근처 부평동 곱창 골목에서 허심탄회하게 소주 한 잔 해도 좋은 기억이 되지 않을까.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산돌을 거쳐 박윤정&타이포랩에서 근무 중이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 등에 글을 기고했으며 서울시립청소년미디어센터, 온라인 플랫폼 클래스101, 이도타입에서 서체 디자인을 가르쳤다.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 ●  @donghoonhaan




타이포그래피서울 바로가기타이포그래피서울 네이버포스트타이포그래피서울 페이스북타이포그래피서울 인스타그램

YOONDESIGN GROUP

homeblogfacebookinstagramstore

맨 위로 기사 공유하기 인쇄하기
맨 위로

Load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