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자소(Studio Jaso)2022.04.26




스튜디오 자소(Studio Jaso)는 2019년 활동을 시작하여 매년 꾸준히 폰트 한 종 혹은 두 종을 발표해 오고 있다. 스튜디오 자소의 운영자는 철저히 ‘얼굴/이름 없는 디자이너’로서만 움직인다. 폰트 디자인이 부업인 까닭이다. 잠든 고양이(이 고양이의 이름은 ‘본업’이다)가 깨지 않을 만큼의 무람하고 사뿐한 보폭으로 성실히 폰트를 만들고 발표하는 것이다. 은밀한 활발함, 이라고 표현해도 좋겠다.

스튜디오 자소의 운영자는 이 인터뷰가 공개된 2022년 4월 26일 현재 작업 중인 새 폰트의 콘셉트를 “침착한데 괜히 유쾌한 온도”라 소개했다. ‘침착한 유쾌함’과 ‘은밀한 활발함’은 대구를 이룬다. 저울 양팔에 둘을 올려놓으면 아마도 평형일 것이다. 폰트 패밀리로 묶여도 둘의 웨이트는 짝하기에 그리 어색하지 않을 것 같다. 인터뷰로 만난 스튜디오 자소(의 운영자)는 대략 이런 온도, 이런 웨이트의 생각들을 내놓았다. 덕분에 이 인터뷰도 비슷한 온기와 무게감을 갖게 된 듯하다.

인터뷰 _ 에디터 임재훈
director@typographyseoul.com


인스타그램에서 스튜디오 자소의 작업들을 늘 구경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한번 인터뷰 제안 DM을 보내드려봤습니다. 생각 외로 상냥한(?) 답신에 적잖이 놀랐었습니다.(웃음) 워낙 대외 노출이 적은 스튜디오라, 왠지 섭외 과정이 쉽진 않겠다는 편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뷰 함께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먼저, 스튜디오 자소에 대해 소개를 좀 해주시죠.

안녕하세요. 폰트 디자인 하는 스튜디오 자소입니다. 본업은 따로 있는 디자이너가 취미로 운영하다 보니 ‘스튜디오’라는 이름이 다소 거창하지만, 정기적으로 제품을 내보겠다는 다짐으로 ‘스튜디오 자소’라 명명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3년 가까이 운영하면서 5개 폰트를 출시하게 됐네요.

가볍게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시대의 필요를 먼저 의식하는 디자인보다는 개인적인 관심과 미감을 바탕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외부로 드러내는 활동도 크게 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급해주신 것처럼 현재 인스타그램 외 대외 노출은 따로 없는데요. 지속적인 소통으로 브랜드 가치를 끊임없이 전달하는 요즘 방식과는 정반대로 운영하다 보니, 보시기에 다소 폐쇄적인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스튜디오 자소가 발표한 폰트들, 2019~2021


글자를 그리고 폰트 상품을 내놓는 작업자인데, 홍보에 너무 무신경한 것 아닌가요?(웃음) 이렇게까지 ‘얼굴 없는 디자이너’ 행보를 고수하는 이유가 궁금해요.

직군의 역할에 경계가 없는 요즘, 디자이너도 디자인뿐 아니라 여러 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시대인데요. 그럼에도 한 분야에 몰입하고 집중하는 디자이너들도 있고 저도 이쪽에 가까운 편입니다. 심지어 ‘폰트 디자인으로 여가를 보내는 작업자’ 정도로 활동하기 때문에 홍보를 많이 외면하기도 해서 개인적으로는 큰 숙제로 남아 있어요.

또 어떤 면에선 작업자가 노출됐을 때 그 사람의 이미지와 스토리가 작업에도 전이되는 것을 배제하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제 경우엔 회사의 폰트를 볼 때는 폰트가 먼저 보인다면, 독립 디자이너의 폰트를 보면 사람이 먼저 궁금해지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작가’보다는 ‘작업’ 위주로 대중에게 다가가고 선택받았으면 했습니다. 몇몇 폰트를 출시하게 되면서 얼굴 없는 스튜디오 자소로서의 방식과 이미지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는 것 같아요.



[류고딕], 2019


[카르멘 산스], 2019


[세잠], 2020
― 세잠(細簪): 가느다란 비녀 ―


제가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건진 모르겠습니다. 틀렸다면 바로잡아주세요. 스튜디오 자소가 출시한 폰트가 지금까지 총 다섯 가지죠? 2019년 [류고딕]과 [카르멘 산스(Carmen Sans)], 2020년 [세잠], 2021년 [씨리얼(Cereal)]과 [스콜라 세리프(Schola Serif)]. 해마다 하나 혹은 둘 정도 페이스로 폰트를 발표하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미 발표한 폰트의 웨이트를 추가하는 방식으로 패밀리를 업데이트하기도 하던데요. 아마도 그래서인 듯한데, 스튜디오 자소의 폰트는 웨이트별 낱개 구매가 가능하더라고요. 게다가 ‘스타터 팩(라이트·미듐·헤비 웨이트)’과 ‘모든 웨이트 합본 팩’도 있고요. 소비자 입장에서 이런 구매 방식, 참 좋습니다.(웃음)

저희 매체의 발행사가 폰트 기업인데요, 제가 그간 보아온 바로는 폰트란 대체로 패밀리 완전체로 출시가 됐거든요. 이런 시스템에 익숙해서인지 스튜디오 자소의 폰트 출시가 조금 낯설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제가 ‘독립 폰트 디자이너 시장’에 무지해서 그랬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판매 시스템은 소비자와의 합의 같아요. 받아들여지는 방식들은 모두 정답인 거죠. 지금은 많이 개선됐지만, 한글의 그 방대한 작업량을 고려하면 여전히 제품의 가격은 비쌀 수밖에 없는 실정인데요. 퀄리티 좋은 무료 폰트도 많아졌고 국내 폰트 기업들의 구독형 서비스 같은 대안이 생겨난 요즘은 웬만큼 괜찮지 않고선 폰트 자체를 구매한다는 게 사용자에겐 큰 부담으로 다가올 거라 생각해요.

충분히 공감 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꼭 이 폰트여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려고 합니다. 제품에는 수명이 있기 마련이고 폰트 또한 저마다 짧고 긴 수명으로 사용자에게 소비되는데, 출시 간격이 큰 독립 폰트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오래 쓰일 만한 폰트를(대체되기 힘든 디자인이나 폭넓은 웨이트 등) 기획하는 것이 안전할 테니까요. 판매를 할 때도 공수에 비해 너무 높지 않은 가격을 설정하려 한다든가, 주로 사용될 만한 웨이트를 묶은 스타터 팩을 따로 둔다든가 하는 방식들을 취하고 있습니다.



[씨리얼], 2021


[스콜라 세리프], 2021


폰트를 구매할 때, 폰트 용례에 쓰인 인용문 읽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주로 소설이나 시에서 옮겨온 문장들일 때가 많은데요. 의류 브랜드의 피팅 모델 역할을 폰트에선 인용문이 담당하지 않나 싶습니다. 모델들이 특정 의류를 착장하고 포즈를 취하듯 인용문들도 폰트를 입고 광고를 하니까요. 그래서 어떤 인용문을 고르느냐에 따라 해당 폰트의 인상이나 맵시가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스튜디오 자소의 폰트들은 용례 인용문들을 참 잘 고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웃음) [류고딕]에는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속 문장들, [스콜라 세리프]에는 무려 『러셀-아인슈타인 선언』 속 문장들을 썼더라고요. 이게, 뭐랄까요, ‘뭔가 이 폰트를 사용하면 나도 인문학적인 인간이 될 것만 같아’ 하는 느낌을 줍니다. 그래서 한번 질문을 드려보고 싶은데요. 폰트 용례 인용문을 고르는 나름의 기준이랄까, 그런 게 혹시 있나요?

비유해주신 것처럼 저도 기획 의도에 부합하는 ‘피팅 모델’을 세우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저는 주로 제목용 폰트를 만들기 때문에 인용문보다는 짧은 낱말들을 나열하는 경우가 많지만, 글줄이 짧아지더라도 기획 의도를 잘 보여주는 단어여야 한다는 건 변함없겠죠. 이때, 폰트만의 장점이라면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이 피팅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건데요. 가끔은 너무 광범위하게 느껴져서 선택하는 게 쉽지 않을 때도 많지만 주로 서체의 어조와 자소의 표현을 기준으로 선정하는 편입니다.

짧은 낱말은 표현의 개성이 바로 드러나니까, 서체에서 특별히 강조되어야 할 자소가 적절히 들어간 단어를 선정합니다. 인용문의 경우는 여러 낱말이 모여 흐름을 이루죠. 그래서 서체 자체의 인상이나 어조가 잘 드러나는 문장을 고르려고 해요. 개인적으로는 손과 쓰기 도구에 의한 자연스러운 인상보다는 이성적이고 표현을 생략하는 방식의 디자인을 선호하기 때문에, 지금껏 건조한 인용문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스콜라 세리프]의 경우에는 서체가 가진 비장함을 부각하고 싶어서 『러셀-아인슈타인 선언』의 문장을 인용했던 거고요.



레터링 작업들, 2019~2022


폰트 제너레이트(generate)도 직접 하신다고요. 제가 속속들이 알진 못하지만, 주변 폰트 디자이너들 얘기를 들어보면 제너레이트 배우기가 정말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배울 수 있는 창구 자체가 부족하다는 얘기였습니다. 무작정 업계 선배를 찾아가서 도제식으로 공부를 했다는 사연도 들었고요. 그만큼 독립 폰트 디자이너가 자력으로 제품 생산부터 유통, 판매까지 도맡아 하기가 쉽지 않다는 방증 같기도 했어요. 이런 맥락에서 스튜디오 자소의 사례는 꽤 긍정적인 모델이 아닐까 싶은데요. 지금의 ‘스튜디오 자소 시스템’을 구축한 과정이 궁금합니다.

디자인을 폰트 파일로 변환하는 제너레이트는 주로 폰트 개발자의 몫입니다. 폰트 디자이너도 일반에는 꽤 생소하고 희귀한 직업이고 그 수도 얼마 안 되지만 폰트 개발자는 디자이너의 작업을 토대로 제너레이트나 유지·보수를 진행하기 때문에 훨씬 희소한 직업이고 관련 지식에 접근하기도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저 역시 이러한 제한적인 정보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활동 초기에는 일단 개발은 제쳐두고 할 수 있는 디자인 작업부터 하기로 했죠.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열린 폰트 개발 실무 강의 덕분에 제너레이트를 배워 제작이 가능해진 케이스입니다. 순전히 운이 좋았던 거죠.



스튜디오 자소의 2022년 출시 예정 폰트
― ‘활력 있는 고딕’을 표방하는 폰트로 이름은 아직 미정이다 ―


[스콜라 세리프]가 지난해 12월 출시됐으니, 올해 여름이나 가을께 왠지 새 폰트가 발표될 것 같은데요. 지금 작업 중인 새 폰트의 예고와 홍보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웃음)

엇, 마침 주머니에 넣어 온 작업을 지금 꺼내면 되는 걸까요?(웃음) 스튜디오 자소는 1년에 한 스타일 이상을 선뵈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기에 올해의 기획도 진행 중인데요. 제가 항상 관심 있는 콘셉트인 ‘활력 있는 고딕’이 주제입니다. 이미 이 주제로 [카르멘 산스]와 [씨리얼]을 제작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두 폰트가 채워주지는 못하는 지점의 인상과 용처가 있고, 해당 군에 더 많은 스타일이 추가되어야 한다고 믿기에 계속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번 작업은 제목체와 본문체 사이에서 사용 가능한 스타일로 설계할 예정이에요. 많은 웨이트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몸이 따라 준다면 이탤릭까지 더한 패밀리로 출시를 해보려고 합니다. ‘침착한데 괜히 유쾌한 온도’로 받아들여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스튜디오 자소의 향후 2~3년간 근미래 계획과 궁극적인 목표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한글 스타일에는 아직 채워지지 못한 빈 공간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관심 가는 스타일을 제작하는 데 오히려 수월한 면도 있어요. 제가 채울 수 있는 빈 공간들, 아직 시도되지 않은 스타일들이 많으니까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작업을 시작했고, 앞으로도 저와 사용자 모두 즐길 수 있는 작업으로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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