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의 글자발견 #4 김광석길, 청라언덕, 그리고 대구지하철 중앙로역2022.06.28




 발로 걸으며 다시 볼 견[見], 일상의 글자를 재.발.견. 
폰트 디자이너 한동훈의 글자 찾기 여행
 대백프라자 ― 김광석길 ― 방천시장 ― 약전골목 ― 청라언덕 ―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덥기로 유명한 대구에 여름 방문이라 걱정했지만 돌아다니는 내내 생각보다 바람이 선선했다. 동대구역에 내려서 가장 먼저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카페인 ‘롤러커피’로 향했다. 갈 만한 카페를 찾아 보다가 헬베티카가 쓰인 컵을 든 게시물을 우연히 봤는데, 바로 롤러커피에서 테이크아웃한 커피였던 것이다. 헬베티카가 다른 단어도 아니고 ‘HELVETICA’라고 쓰였다는 것은 그것이 라틴 알파벳 서체 헬베티카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썼다는 뜻이니 호기심이 안 갈 수 없었다.


대구의 카페 ‘롤러커피’ 테이크아웃 컵에 각인된 HELVETICA.
서체도 물론 헬베티카다.

디자인과에 입학해 이름을 가장 먼저 접한 라틴 알파벳 서체가 헬베티카였다. 처음 나온 과제가 헬베티카를 써서 하는 것이었으니. 상당히 생소한 이름이었지만 검색해보고 나서 ‘아, 이거!’ 하며 익숙한 디자인임을 깨달았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각종 유명 회사의 로고타입에도 쓰이고, 우리 주변에 가득한 말 그대로 공기 같은 서체라 놀랐다. 롤러커피의 ‘헬베티카 컵’은 그야말로 타이포그래퍼를 위한 테이크아웃 컵인 셈이다.

길 모퉁이 2층 건물에 자리한 롤러커피는 상당히 붐볐다. 그 와중에 주문을 마치고 나온 커피를 봤는데 아무 글자가 없는 컵에 주는 것이 아닌가. 알고 보니 필자가 시킨 것은 평범한 7온스 카페라떼고, 헬베티카 컵을 얻으려면 좀더 작은 5온스 커피를 시켜야 했다. 친절한 직원은 재주문의 포인트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쨌든 5온스 카페라떼를 하나 더 시켜 헬베티카를 얻었다. 카페인 풀 충전과 함께 미션 성공. 나중에 목돈이 생기면 타이포그래퍼를 위한 카페를 운영하고 싶다. 메뉴 선택과 인테리어에 이르는 전 과정에 서체가 큰 존재감을 발휘하는···.


김광석길의 노래하는 글자들, 재래시장 속 복고풍 서체


대봉교 쪽으로 좀 걸으면 대백프라자가 나온다. 근처의 높고 큰 건물이 이뿐이라 한참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1990년대 분위기의 외벽 글자 ‘DEBEC’이 눈에 띄었다. 심벌 옆에 늘어선 극단적인 장체 알파벳 로고타입은 전형적인 이 시기 시각 문법. 처음 보고 은행잎을 형상화한게 아닌가 싶었던 심벌은 대구의 옛 명칭 ‘TAEGU’의 ‘T’에서 따왔다고 한다. 대백프라자의 정식 명칭은 대구백화점 프라자점인데, 본사 ‘대구백화점’의 한글 로고타입이 네모틀에 꽉 찬 디자인이라 약간 언밸런스한 느낌은 있다. 두께도 매칭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직 건물 외벽과 주차타워 등에 현역으로 쓰이는 모습을 보니 초면에도 반가움이 앞섰다.



대백프라자(대구백화점 프라자점) 로고타입

신천은 대구 중구를 가로지르는 제법 큰 하천이다. 하천 둔치 한편에서 어르신들이 복식으로 치는 테니스 소리가 경쾌하다. 대봉교에 올라 신천 양쪽을 바라보면 아파트가 정말 많다. 우방아파트, 삼익아파트, 삼환아파트···. 반대편에는 LH의 최신 아파트가 있어 연대별로 파노라마를 이룬다.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근처를 둘러보며 느낀 점은 대구 글자를 상징할 수 있는 대표 키워드 중 하나가 ‘아파트 글자’라는 것이다. 수도권이나 타 지역에서는 멸종된, 우방이나 청구처럼 오래전에 흡수되거나 청산된 향토·중견 건설업체의 로고타입이 아파트 외벽에 많이 남아 있다. 특히 화성산업 아파트와 관련 글자는 타 지역에선 정말 보기 힘든 것인데 대구에선 심심찮게 보인다. 프랜차이즈가 아닌 지역 아파트나 빌라, 맨션 글자도 많다.


대봉교에서 바라본 신천 인근의 아파트들.
우방이나 청구처럼 오래전에 흡수되거나 청산된
향토·중견 건설업체의 로고타입이 아파트 외벽에 많이 남아 있다.

근처 대봉동의 인물이라고 한다면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중반을 풍미한 포크 싱어송라이터 김광석을 꼽을 수 있다. 특유의 초연한 이미지로 가객이라 불리는 그는 대구 중구 대봉동에서 태어나 다섯 살까지 살다가 서울로 이사 갔다고 알려져 있다. 1982년 명지대 재학 시절 노래를 처음 접했고 1984년 데뷔해 노찾사, 동물원 등의 그룹을 거치면서 지향점을 정립했다. 1989년 가을 솔로 1집 발매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 나갔다. 그를 상징하는 이미지라면 장발에 가까운 긴 머리와 소탈한 미소, 통기타, 목에 건 하모니카. 그리고 1천 회가 넘는 끈질긴 소극장 공연이 있다. “힙합과 댄스, 발라드에 밀려 꺼져가던 모던 포크의 불씨를 되살렸다”*고 평가받기도 한다. 김광석 앨범 커버의 ‘김광석’ 글자는 1, 2집의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시작해 좀더 두꺼운 손글씨(3집)로, 그리고 단단한 탈네모꼴 고딕(4집)으로 변해 간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대중가요앨범11000〉의 「가요앨범 리뷰: 김광석 네번째」(대중문화평론가 최규성 감수)


김광석 정규 1집(1989), 2집(1991), 3집(1992), 4집(1994) 커버의 ‘김광석’ 글자들
이미지 출처: ManiaDB.com

김광석이 부른 노래 중에 나이를 소재로 한 곡은 많지 않다. 그러나 대표곡을 꼽으라면 「서른 즈음에」,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처럼 나이를 전면에 논하는 곡이 먼저 생각난다. 그는 음악 세계에서 자신만의 장르를 확고히 다져 인생과 커리어의 황금기가 막 열리려는 시점에서 너무 빨리 떠나버렸다. 그의 마지막과 관련해 영화까지 따로 만들어지는 등 각종 설이 있지만, 여러 정보를 검토한 결과 음모론의 신빙성은 떨어진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가 짊어졌을 고통의 무게를 감히 짐작하기는 어렵지만, 예리한 창작의 날이 좀 무뎌지더라도 고뇌 없이 우리 곁에 오래 함께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본다. 이제 올해가 지나면 그는 나보다도 나이가 적다.


김광석길(김광석다시그리기길), 영원히 노래하는 김광석


김광석길의 김광석스토리하우스 전경.
안으로 들어서면 “광석이네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인사말이 방문객을 반긴다.


김광석길의 노래하는 글자들

대구광역시는 2010년 그가 유년기를 보냈다고 알려진 방천시장 옆 달구벌대로 450길 일대 350미터 남짓한 길을 ‘김광석다시그리기길’이라는 문화 랜드마크로 조성했다. ‘다시그리기길’이란 이름은 김광석이 1990년대 초중반 발표한 리메이크 음반 『김광석 다시 부르기 1, 2』에서 착안한 것이다. 길에 들어서자 여러 안내판과 노래 가사를 표현한 벽화, 카페 등의 다양한 장소가 보였다. 연인이나 친구와 시간을 보내도 좋지만 혼자 산책하기에도 적당한 길인 듯 싶다. 개인적으로 요즘에는 4집 수록곡 「혼자 남은 밤」을 많이 듣는 편이다. 포크 그룹 ‘동물원’의 1988년 1집 앨범에 수록된 「변해가네」와 비교되는 김광석의 솔로 버전 「변해가네」도 좋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변해가는 나 자신을 노래한 곡인데, 동물원 버전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변해가는’ 느낌이라면 김광석 버전은 ‘나 자신을 능동적으로 바꿔 나가는 듯한’ 힘찬 느낌이 든다.

길 옆에는 김광석의 어린 시절과 음반과 공연 포스터 등의 각종 자료, 신문 기사, 추모글, 그리고 생전 진행하던 라디오 방송 등을 정리해놓은 김광석스토리하우스도 있다. 2층의 공간을 작지만 꽉 채워 전시한다. 입장 시 제공하는 엽서를 적어 건물 앞 ‘느린우체통’에 넣으면 1년 후에 받아볼 수 있다고 한다. 생각나는 문구를 즉석에서 짤막하게 하나 써서 넣었다. 잊어버릴 때쯤 다시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방천시장에서 발견한 글자들

내가 방천시장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회고록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에서다. 그는 어린 시절 대구 방천시장에서 신문 배달을 하며 보낸 날을 회상했다. 책을 읽으면서는 전형적인 재래시장을 상상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상당히 현대화된 모습이라 놀랐다. 시장 천장에는 바로 옆 김광석길과 연계된 차양이 있어 햇빛도 가려준다.

이른 저녁이지만 시장은 각종 맛집과 술 한 잔을 찾는 인파로 상당히 붐볐다. 가게들을 살펴보니 최근 볼 수 있는 주목성 높은 무료 서체들이 주로 포진해 있어 과거 흔적은 완전히 사라진 듯하지만, 구석구석에 갈비집, 통닭집, 미용실 등 옛 방천시장의 아날로그 글자도 역시 공존하고 있다. 이 와중에 [배달의민족 한나체]로 쓰인 생고기집 입간판도 보였다. 옛날 간판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든 서체를 현장 상인들이 다시 활용하는 역전 현상은 항상 흥미로운 주제다.

방천시장을 지나 단층 건물군에 조용한 가게가 많은 근처 삼덕동 일대를 구경하니 날이 어두워져 온다. 곳곳에 브랜딩이 잘 된 보석 같은 가게들이 숨어 있어 약속 장소로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란하지 않지만 잘 다듬어진 심벌이나 글자로 포인트를 준 곳이 대부분이다.


삼덕동의 한 된장찌개집


글자 ‘대목’ 약전골목, 100년의 시간 간직한 푸른담쟁이덩굴


숙소에서 나와 조선 시대부터 수백 년의 전통을 지녔다는, 각종 약재상이 양편에 늘어선 약전골목을 지나갔다. 그런데 이곳이 뜻밖의 ‘대목’이었다. 약재상 특유의 보수성이 뚜렷하여, 아직 디지털 폰트의 바람에 흽쓸리지 않고 남은 옛 글자의 비중이 다른 곳보다 많다. 예상 가능하듯 주로 고딕이 아닌 붓글씨 계열이다. 물론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간판에 [여기어때 잘난체]처럼 최신 무료 폰트를 적극 수용한 약재상도 있긴 하다.





약전골목의 글자들


소설가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 문학관


대구에 들어선 최초의 성당이자 영남 지역 최초의 고딕식 성당인 계산성당

소설가 김원일의 장편소설 『마당 깊은 집』(1997)을 재현한 문학관, 시인 이상화 고택을 거쳐 계산성당을 구경했다. 도시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랜드마크가 서로 모여 있어 방문이 편했다. 미사가 진행 중이라 안까지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대구 지역 최초의 성당이자 영남 지역 최초의 고딕식 성당이라고 하는 계산성당의 분위기는 조용하지만 주변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 1918년 현재 모습으로 완성되었고 1991~1992년 대대적인 개보수를 거쳤다. 이곳은 1950년 12월 박정희·육영수 전 대통령 내외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기도 하다. 혹시 서울 곳곳에 남은 박정희 친필처럼 남은 관련 글씨가 있는지 살폈으나 특별한 것은 눈에 띄지 않았다.


청라언덕의 또 다른 이름인 ‘동산’을 딴 아파트 명패

근처에 있는 청라언덕으로 발을 옮겼다. 적당히 걸어 올라가기 좋은 높이에 ‘푸른 담쟁이덩굴‘을 뜻하는 ‘청라(靑蘿)’라는 이름을 가진 이곳은 20세기 초 대구 지역 선교사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그들이 심은 담쟁이가 지명의 어원이 되었다. ‘동산’이라는 이름도 갖고 있는데 옛 달성토성이 대구 중심지였을 때 그 동쪽에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래서 그 앞 아파트의 이름도 동산맨션인 모양이다. 청라언덕에는 옛 선교사들이 생활했던 주택과 대구 최초의 서양 사과나무, 가곡 「동무 생각」 노래비, 선교사와 그 가족의 유해가 안장된 은혜정원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선교사들이 생활했던 1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근대 주택은 현재 3채가 남아 있다. 대표적 인물의 이름을 따서 각각 챔니스(Chamness), 블레어(Blair), 스윗즈(Switzer) 주택으로 불린다. 선교사들이 떠난 지금은 대구 근대사를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쓰인다. 건축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건물이라 하지만 아쉽게도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무기한 휴관에 들어가 내부를 살펴볼 수는 없었다. 붓글씨의 힘찬 흐름이 살아 있는 건물 앞 표지석 글자와 은혜정원 묘비에 쓰인 다양한 알파벳 서체가 아쉬움을 달래준다.


청라언덕의 챔니스·블레어·스윗즈 주택은 대구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아! 대구지하철


2003년 2월 18일 아침 10시경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350여 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냈다. 2000년대 초반의 충격적인 참사 중 하나가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다. 대구지하철은 유달리 대형 사고가 많았던 현장이다. 1995년 많은 희생자를 낸 상인동 가스 폭발 사고의 상처가 채 가시기도 전에 발생한 더 큰 참사는 대구라는 한 지역을 넘어 전국을 충격에 빠뜨렸다. TV로 생중계되던 검은 연기 가득한 중앙로역과 지친 소방대원, 오열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20년이 지난 지금도 눈앞에 선명하다. 방화범과 중앙로라는 이름, 마스터 키를 빼고 떠난 기관사, 비극의 상징이 된 1079·1080이라는 전동차 번호는 앞으로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불붙기 쉬웠던 지하철 좌석이 전국적으로 차가운 금속 재질로 바뀐 계기가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인 걸로 알고 있다. 비상시 전동차 문을 열고 탈출하기 쉬워지는 등의 지하철 승객 안전 조치 또한 2003년의 희생이 있고 나서야 바뀐 것이다.

그 현장이었던 중앙로역에 가 보았다. 지금은 역마다 평범한 고딕으로 많이 대체되어 지하철 전체를 관통하는 통일된 디자인 가이드라인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원래 대구지하철에도 전용서체가 있다. 이 서체는 가로로 긴 평체 형태에 각진 모서리를 둥글린 형태를 하고 있다. 지하철이 처음 건설되던 연대를 기준으로 아주 새로운 조형은 아니다. ‘타는 곳’, ‘나가는 곳’ 등의 사인에 다른 고딕과 뒤섞여 남아 있는데 군데군데 보이면 괜히 반갑다.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역내에 2003년의 화재 현장이 보존되어 있다.


왼쪽 사진도 오른쪽 사진도, 모두 혈압측정계다.
두 사진을 나란히 놓고 보니 묘한 기분이 든다.


한때 존재했던 대구지하철 전용서체의 흔적이
일부 안내 표지들에 남아 있다.

역 안에 희생자 추모와 현장 벽을 존치시킨 기억공간이 조성되어 있다. 희생자 명단과 함께, 투명한 벽으로 막히기 전 시민들이 벽에 그을음을 이용해 손으로 남긴 글씨를 하나하나 읽으니 TV 보도를 처음 본 날처럼 가슴이 아리다. 기분 탓인지 기억 공간 주변에 옛날 전용서체가 더 많은 느낌이다. 현장 잔해 속에 열기에 그을려 형편없이 녹아버린 혈압 측정기와 의자가 놓인 책상이 있는데, 바로 맞은편에 같은 역할을 하는 시설물이 설치되어 현재 시민들이 이용하고 있어 묘한 기분이 들었다. 혹자는 이런 공간을 남겨두거나 계속 말하는 것이 아픈 상처를 들추는 것 아니냐고 한다. 그러나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는 사회가 존재하는 한 절대 잊히면 안 되는 역사다. 과거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기억하기, 단지 글 몇 줄과 사진만으로 받아들이기. 이 두 방식의 인식 차이는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김광석길 벽화 글자 해석파생


김광석다시그리기길에 있는 「일어나」(김광석 정규 4집 수록곡)를 주제로 한 벽화 글자는 손으로 일일이 칠한 ‘그린 글자‘이지만 일필휘지로 ‘쓴 글자’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곡에서 모티프를 얻어 획의 강약을 달리한 모습으로 힘찬 느낌을 주는 이 글자의 DNA를 한번 짚어보자.



  ▶︎ 일렬로 된 글자가 아니라 특정 구역을 중심으로 불규칙하게 모인 레터링이다.
  ▶︎ 일정한 가로세로 획 두께 대비가 아닌 여러 가지 대비를 갖고 있다.
  ▶︎ 고딕보다 명조에 가까운 형상을 취하고 있다.
  ▶︎ 손으로 투박하게, 마치 나무나 돌을 깎아 만든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 이로 인해 획이 단순하지 않고 여러 가지 깎인 면을 갖고 있다.
  ▶︎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사선 글자틀을 갖고 있다.
  ▶︎ 이응[ㅇ]의 경우 위쪽이 열린 모양[‘일’, ‘어’]과 삼각형에 가까운 모양[‘해’, ‘야’]이 공존한다.
  ▶︎ 니은[ㄴ], 리을[ㄹ] 꼴은 끝 획을 삐침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 가로보[‘보’, ‘는’]가 아래쪽으로 반원형을 그린다.
  ▶︎ 초성 비읍[ㅂ]은 위쪽이 가장 넓고 아래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다.
  ▶︎ 특정 자소가 오면 중성과 종성이 이어지는 조합[‘한’, ‘번’]이 있다.
  ▶︎ 서체의 중심이 되는 중성 세로 기둥의 디자인이 낱자에 따라[‘나’, ‘야’] 완전히 변한다.

DNA를 분석했다면 한글 파생 원리에 의해 다른 낱자도 만들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대구의 글자발견 일어나 다시 한번 해 보는 거야’라는 견본 문자열을 제작해 보았다. 「일어나」의 가사 일부다. 이번에는 파생과 함께, 원래 불규칙한 레터링 형태로 되어 있는 글자를 규칙적인 서체로 정제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버릴 요소는 버리고 유지할 요소는 유지하며, 좋지 않은 특징은 없애고 차별화되는 특징은 강조했다. 그것은 디자이너 개인의 성향이자 선택이다. 글자폭은 너무 좁히면 원본 노래의 느낌이 살지 않고 숨가쁜 느낌이 들어 990유닛(Unit) 정도로 비교적 넓게 잡아 보았다. 무게 중심을 살짝 위쪽으로 둔 완성형 탈네모틀로 제작하여 글자 아랫선에 리듬감을 부여했다.



  ▶︎ ‘일어나’
  받침이 있는 [일]을 기준으로 받침 없는 [어], [나]의 높이 차이가 커서 받침 없는 낱자를 전부 위아래로 조금씩 늘려 주었다. 가운데 [어]의 중성 세로 기둥은 나머지 두 낱자와 결이 다르다. [일], [나]의 세로 기둥이 일직선으로 뻗은 반면 [어] 세로 기둥은 살짝 휘어 있다. 글자꼴에 따라 달리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는 통일해준다. [나]의 중성 [ㅏ]의 세로 곁줄기는 서체화될 경우 다음에 오는 낱자와 간섭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므로 길이를 줄여 준다. [어]와 [나] 초성의 크기 차이가 많이 나므로 [나]의 [ㄴ] 좌우 크기를 줄인다.

  ▶︎ ‘다시 한 번’
  중성 세로 기둥의 두께와 각도, 디자인은 [나]를 기준으로 통일해준다. [다] 초성 디귿[ㄷ]의 크기와 각도를 [나]의 ㄴ을 기준으로 맞춘다. [시]의 초성 시옷[ㅅ] 크기는 [ㄴ]을 기준으로 하되, 왼쪽 빗침을 강조했다. [한]의 초성 크기는 [어], [나] 등을 기준으로 맞췄다. 종성 [ㄴ]은 [일]의 종성 [ㄹ]과 차이가 많이 나는데, [ㄹ]을 기준으로 비슷한 크기와 각도로 맞춰야 한다. 다만 획이 많은 [ㄹ]보다는 차지하는 면적이 좀더 위쪽으로 치우칠 것이다. 종성 [ㄴ] 끝의 돌출부는 개성 있는 요소인 만큼 더 강조해 준다. [번]의 종성 [ㄴ]은 각도가 다른 글자와 다른데 ‘한’의 종성으로 통일한다.

  ▶︎ ‘해 보는 거야’
  [해]의 초성 히읗[ㅎ]은 [한]과 다르다. 위쪽 꼭지와 아래쪽 [ㅇ]이 분리되어 있다. 받침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다르게 만든다는 규칙을 세울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일단 [한]의 [ㅎ]으로 통일해 준다. [해]의 낱자 면적이 다른 것보다 상당히 넓기 때문에 [어]를 기준으로 너무 좌우로 돌출되지 않도록 좁힌다. [보]의 초성 [ㅂ]은 [번]과 다른데 정제하기엔 [번] 쪽이 낫다고 판단되어 [번]의 [ㅂ]으로 통일한다. [보]의 가로보는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되어 세로 기둥에서 볼 수 있는 획의 시작과 종성 [ㄴ], [ㄹ]에서 보이는 힘찬 맺음을 참고해 쭉 뻗은 가로획으로 완전히 새로 제작했다.

  [는]의 초성 [ㄴ]은 왼쪽으로 누워 있어 오른쪽으로 누운 전체적인 시각 흐름을 저해한다. 따라서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모양으로 완전히 새로 제작했다. 종성 [ㄴ]은 [한], [번]의 종성과 완전히 다른데, 일관성을 유지하기 힘들다고 판단되어 [한], [번] 쪽으로 통일했다. [야]의 초성 [ㅇ]은 다른 [ㅇ]과 다른데 제한적으로 쓰일 경우 개성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되어 유지했다. 중성 곁줄기 두 개 중 아래쪽 획을 기둥과 떼어 단조로움을 탈피했다.



✻                    ✻                    ✻



시장 특유의 손글씨가 가득한 서문시장과 현재 삼성그룹의 발원지인 삼성상회 옛터, 그리고 대구의 여러 공원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친근하다고 하는 시민의 휴식처 달성공원을 마지막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공원 초입의 원형 정원은 예전 초등학교 수학책에서 문제풀이의 예시로 등장했는데 이렇게 실제로 와서 보니 신기하다. 달성공원의 여러 시설물을 잘 보면 대대적으로 조성된 1960~1970년대 글씨가 곳곳에 있어 찾는 재미가 있다. 필자는 관찰한 대상을 한두 단어나 문장으로 정리하려는 성향이 있다. 도시를 돌아볼 때도 문장이나 키워드가 머릿속에 떠다닌다. 대구 시가지를 둘러보면서 전통적인 영남의 중심지로서 축적된 고유의 문화와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이유 있는 저력의 도시’ 라고 정의하고 싶다.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산돌을 거쳐 ㈜티랩에서 근무 중이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 등에 글을 기고했으며 서울시립청소년미디어센터, 온라인 플랫폼 클래스101, 이도타입에서 서체 디자인을 가르쳤다.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 ●  @donghoonh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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