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북마크] 본업 얘기 아니어도 괜찮아― 디자이너의 ‘마음’ 묻어난 에세이들2022.06.30



전업 작가가 아닌 이들이 자기 업에 관한 이야기를, 혹은 업과 무관한 일상사나 개인사를 글―한두 줄 분량의 단문이 아닌, 여러 ‘문단’들로 이루어진 글 한 편―로 적어 타인과 공유하는 건 이제 낯익은 문화다. 소셜 미디어, 글쓰기 전용 플랫폼(카카오의 ‘브런치’ 같은) 계정만 있다면 누구나 이 문화의 일원이다.

사람들은 왜 (자기 생업으로도 바쁠 텐데 구태여 시간을 들여면서까지) 글을 쓰려 할까? 왜 (전업 작가도 아닌,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보이는 낯선 타인이 쓴) 글을 읽으려 할까? 문득 이런 궁금증을 가져본다. 쓰고 싶어서 쓰는 거고, 읽고 싶어서 읽는 것. 당연한 답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이유가 있을 필요는 없다. 어느 소설의 한 대목처럼 “왜 그렇게 사냐는 질문은 왜 그런 춤을 추고 있냐는 질문과 같은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궁금하다. 굳이 왜, 글을 쓰려고/읽으려고 하는 걸까. 『타이포그래피 서울』 에디터는 그 답을 국어사전에서 찾았다. 우리말에 ‘문심(文心)’이라는 낱말이 있다고 한다. 풀이가 제법 근사하다. ‘글쓰기 과정에 개입하는 마음의 작용’. 그러니까, 글쓰기는 마음의 작용이 있음으로써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쓸 때뿐만이 아니고 읽는 순간에도 문심은 일어나지 않나 싶다.

이 ‘문심’이라는 개념에 근거하여 생각해보니, 『타이포그래피 서울』 에디터가 ‘디자이너들의 글’을 탐독하는 이유를 스스로 납득할 수 있었다. 디자이너들의 ‘마음’이 궁금했던 거야, 라고 말이다. 저들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나, 저들의 마음이 디자인이 아니라 글에 작용하였을 때는 어떤 모양새인가, 하는 궁금증. 본업 얘기여도 좋고 일상다반사 잡담이어도 괜찮다. 마음은 어디에나 묻어 있을 것이다. 이렇듯 디자이너의 문심이 묻어난 에세이 몇 권을 가져와 보았다.

에디터 임재훈
director@typographyseoul.com



출처: 알라딘

『디자이너의 작업 노트』(길벗, 2022)  장기성 씀 


트라이-앵글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장기성이 썼다. 제목대로의 내용이 틀림없는 정직한 책이다. 현업 디자이너이자 스튜디오(사업체) 운영자(경영자)로 일하며 체득한 실무 노하우와 시행착오를 꼼꼼히 적어놓았다. 첫 챕터부터 차례로 읽어 나가도 좋을 것이고, 업무 안내서처럼 자신에게 필요한 챕터를 그때그때 찾아 읽는 방식도 유용할 듯하다. 출신은 실무서인데 성격은 에세이인 책이랄까. 사무적 어조가 아닌 ‘친한 선배의 음성’으로 디자인 실무 얘기를 듣는 느낌이다. 혼자만의 권위보다 모두와의 우애와 연대를 지향하는 마음이 행간마다 묻어 있다. 그래서인지 책이 부드럽게 잘 넘어간다.



출처: 알라딘

『싫어하는 음식: 아니요, 그건 빼주세요』(세미콜론, 2022)  안서영 외 스물한 명 씀 


‘싫어하는 음식’을 주제로 한 산문집이다. 시인, 소설가, 기자, 의사, 요리사, 일러스트레이터, 미디어 아티스트 등 스물두 명의 글 스물두 편을 엮었다. 공저자 중에 낯익은 이름이 있다. 스튜디오 고민을 운영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안서영. 책에 실린 에세이 제목은 「나만 아는 맛집 같은 건 세상에 없겠지만」. 이른바 ‘먹스타그램’ 시대에 나만 아는 “숨은 맛집”이나 “보석 같은 곳”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그렇지만 나만 감각할 수 있는 미각의 세계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산뜻하고 수수한 문장들이 벗하고 있는 글이다.



출처: 알라딘

『앉지 마세요 앉으세요』(안그라픽스, 2021)  김진우 씀 


디자이너이자 디자인 교육가, 디자인 저술가인 김진우의 ‘의자 에세이’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앉음에 대한 에세이’다. 김진우는 첫 책 『앉지 마세요 앉으세요』에 이어서 『걷다가 앉다가 보다가, 다시』(안그라픽스, 2022)를 썼다. 둘 모두 ‘앉음’이라는 행위를 디자이너의 시선과 디자인사의 렌즈로 관찰하고, 그 바라본 바를 서정적인 글로 정리한 산문집이다. 김진우의 글을 읽고 나면 내 주변의 ‘앉을 수 있는’ 모든 사물들이 한껏 대단하게, 그리고 유일하게 보일 것이다. 평범한 행위와 사물에까지 오래도록 눈을 두는 태도, 그러고는 기어이 의미를 부여하여 그 행위와 사물을 보듬는 성정. 작가 김진우의 문심은 그러한 것이다.



출처: 알라딘

『은유 수업』(텍스트프레스, 2021)  이성민·황지은·오현지·윤경근·현재호·박민지 씀 


철학자 이성민, 그의 수업을 들은 디자이너 다섯 명이 함께 쓴 철학 에세이다. 다섯 디자이너들은 수업 기간 동안 은유라는 개념을 사유했고, 철학자의 지도와 감수를 거치며 저마다의 은유‘론’을 펼쳤다. 『타이포그래피 서울』 에디터의 견해에 불과하지만, 철학을 위시한 인문학 담론을 디자인 이론과 결합하는 시도는 한때 일본에서 특히 활발했던 것 같다. 스기우라 고헤이, 마쓰다 유키마사(스기우라 고헤이의 제자이기도 하다), 무카이 슈타로의 책을 읽어본 이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은유 수업』을 읽는 동안 『형태의 탄생』, 『눈의 황홀』, 『디자인학: 사색의 컨스텔레이션』 같은 책들을 다시 집어들고 들춰 보기도 했다. 『은유 수업』의 후속작, 또는 공저자인 다섯 디자이너들의 본격 철학 에세이를 읽어볼 수 있으면 좋겠다.


출처: 알라딘

『저, 죄송한데요』(민음사, 2016)  이기준 씀 


어쩐 일인지 북 디자이너 이기준과 소설가 겸 일러스트레이터 김중혁을 늘 혼동했다. 이기준을 김중혁으로, 김중혁을 이기준으로 알았다가 정정하는 사태가 빈번했던 것이다. 언제부터였던가 생각을 해보면 『저, 죄송한데요』를 읽고 난 후다. 이기준의 글을 읽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김중혁의 글을 연상한 게 아닌가 싶다. 두 사람의 문체가 비슷했던가 생각을 해보면, 그건 또 아니다. 분명 아닌데, 뭔지 모르게 두 작가의 글이 포개졌다. 매체 인터뷰에서 노출되는 두 작가의 모습이 『타이포그래피 서울』 에디터의 눈에 비슷하게 보였던 탓도 있다. 유머 넘치고 재미있는 사람일 것 같다, 특별하게 특이한 느낌이다, 보고 있으면 괜히 유쾌해진다, 같은 공통의 인상이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간에, 디자이너 이기준의 『저, 죄송한데요』는 정말 재미있다. 이 책을 읽으며 여러 번 웃었고, 대체로 그 웃음들의 의태어는 ‘낄낄’, ‘풉’, ‘크크크’, ‘푸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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