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의 글자발견 #5 근대와 현대의 두 얼굴, 군산2022.07.29




 발로 걸으며 다시 볼 견[見], 일상의 글자를 재.발.견. 
폰트 디자이너 한동훈의 글자 찾기 여행
 은파호수공원 ― 나운동 거리 ― 진포해양테마공원 ― 신영시장 ― 동국사 ― 경암동 철길마을 

               

유명세에 비해 생각보다 고즈넉한 장항선 군산역에 내려 택시를 타고 시내로 달렸다. 역 주변은 넓고 황량했다. 군데군데 올라가는 고층 아파트군만이 눈에 띄었다. 전통적인 시가지와는 거리가 좀 있는 듯 보였다. 숙소에 잠깐 들렀다가 바로 앞에 있는 은파호수공원을 둘러보았다. 해질녘 반짝이는 물결이 아름다워 ‘은파(銀波)’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곳은 대동여지도에도 등장하는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진 저수지라 한다. 원래 농업용 저수지였으나 저수지를 포함한 산들이 관광지로 지정되고 순환도로가 닦이는 등의 변화를 거쳐 지금 모습이 되었다.



나는 은 은(銀)과 물결 파(波) 자의 어감을 예전부터 좋아했다. 그런 ‘은빛 물결’을 이름으로 갖고 있다니 참 고즈넉하고 좋은 명칭이란 생각이 든다. 호수 주변에 조성된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여름이 왔다는 것이 실감난다. 은파호수공원은 대표적인 벚꽃 명소라고도 하는데, 계절이 계절인 만큼 꽃을 보지는 못했지만 봄철에 다시 와도 좋을 듯 싶다. 벚꽃과 물의 조합은 실패하지 않으니까.


은파호수공원

나운동 큰길에서 살짝 옆으로 빠지면 군산상업고등학교가 있다. 운동장에서는 주말에도 타격 연습이 한창이었다. 군산상고는 특히 야구부가 명문으로 유명하다. 20세기 KBO를 주름잡은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의 ‘김씨 왕조’ 선수단 김봉연·김일권·김준환 등이 바로 군산상고 출신이다. 군산상고 역전의 역사는 1972년 7월 19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창단 4년밖에 안 되었던 군산상고 야구부는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9회까지 서울고에 1 대 4로 끌려가다가 5 대 4로 역전해 첫 우승을 품에 안았다. 프로야구가 없던 당시, 고교야구의 전국적 인기는 엄청났다. 이 극적인 스토리는 당시 〈자! 지금부터야〉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군산상고는 이후에도 각종 대회에서 1점차 역전승을 거두는 일이 많아 ‘역전의 명수’로 불리게 됐다고 전한다. 2022년은 공교롭게도 경기 50주년이 되는 해다.


1970년대 고교야구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군산상고


과거현재가 공존하는 군산 구시가지


군산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가 일제시대의 흔적이다. 군산에는 한반도의 어느 지역과 비교해도 식민지배의 색채가 짙게 남아 있는 편이다. 그것은 호남평야에서 나온 쌀을 서해 항구를 통해 반출할 수 있었던 지리적 조건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현재 볼거리로 승화되어 군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색다른 근대의 흔적과 수탈의 아픈 역사를 동시에 느끼게 한다.

군산 구시가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크게 둘로 나뉜다. 일본 주거 양식의 다수였던 목조 건물과 사무실 등 공공 목적을 가진 근대식 건물이 그것이다. 목조 건물 느낌을 재현한 게스트하우스 ‘여미랑’, 바로 붙은 카페 ‘고우당’은 정원을 한 바퀴 걷는 것만으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실제 숙박 시설이라 내부 탐방은 불가능했지만 다시 찾는다면 이런 숙소에서 평화롭게 긴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러다가 문득 노트북을 펴고 생각난 글자 아이디어를 컴퓨터로 유유자적 옮기는 휴식시간이라면···. 상상만 해도 멋지다. 여유 있는 분위기라면 서체도 더 단단하고 완숙하게 다듬어질 것만 같다.

이외에 식민 지배기 회사나 관공서 청사로 쓰인 군산의 대표적인 근대 건축물로는 구 남조선전기주식회사, 조선식량영단군산출장소, 군산근대건축관 등이 있어 하루에 둘러 보기 좋다. 오래된 가옥을 개조해 만든, 순명조에서 모티프를 얻은 간판의 [Sandoll동백꽃]이 눈에 띄는 군산항쟁관은 일제강점기 군산 지역의 항일 운동 사료를 망라해 전시하는 곳이다. 


적산가옥을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한 여미랑


군산항쟁관

주변에는 신흥동 일본식 가옥(히로쓰 가옥)이라는 랜드마크도 있다. 히로쓰 가옥은 일제강점기 유명한 포목점을 운영하던 일본인 히로쓰 게이사부로가 1925년 지은 2층 목조 가옥이라 한다. 기역[ㄱ]자로 된 본채와 중앙의 일본식 정원 등 일본 전통 양식이 비교적 온전하게 남아 있는 모양새로 〈장군의 아들〉, 〈타짜〉 등 많은 영화의 촬영 장소로 쓰였다. 메뉴판을 손으로 써서 밖에 세워 놓은 분위기 좋은 카페가 가옥 근처에 많으니 더운 여름날 시원한 음료 한 잔 해도 좋겠다.

차가 별로 없어 한적한 거리에 이를 배경으로 앞모습, 뒷모습 사진을 열심히 찍는 일행이 눈에 띄었다. 여행 가서 주로 SNS에 업로드할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시대가 바뀌었다면 그것 또한 새로운 풍속도이고 충분히 여행의 목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쁜 배경에 비친 자기 모습을 많이 남김으로써 그 순간을 즐겼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굳이 자기만의 편협한 잣대를 내세워 타인에게 큰소리치기보다 다른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히로쓰 가옥과 주변 카페의 손글씨 메뉴판

시인 박인환이 1940년대 서울 종로에서 운영하던 문학·예술 전문 서점 마리서사에서 이름을 딴 군산 마리서사는 다른 건물이 그렇듯 근대문화역사거리 한편에 조용히 놓여 있는 독립서점이다. 책을 매개로 한 문화공간을 조성하려 한 대표의 의도가 미닫이문을 열고 입장하게 되어 있는 전면부에서부터 나타난다. 한글이었다면 어딘가 아쉬웠을 로고타입은 직선 위주의 한자로 만들어 근처와 시각적인 톤을 맞췄다. ‘茉莉書舍(마리서사)’ 획의 밀도가 과하지도 적지도 않아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은은하게 빛난다.


독립서점 마리서사

좀 걸으니 사람들이 모여서 사진을 열심히 찍는 곳이 나온다. 뭔가 하고 가봤더니 익숙하게 보이는 간판 ‘초원사진관’. 초원사진관은 1998년 개봉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의 주요 무대다. 이 작품은 한쪽이 불치병을 앓는 커플의 사랑 이야기라는 뻔한 설정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히트했고,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클래식이 되었다. 필자는 개봉 당시 감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특유의 앵글과 색감, 분위기는 몇 년이 지나고 봐도 어딘가 아련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초원’이라는 이름은 주연 배우 한석규가 어릴 적 살던 동네의 사진관 이름에서 따왔다고 한다. 영화의 영향인지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도 ‘초원사진관’ 이름을 단 스튜디오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에서 본 익숙한 정면 간판이 뭔가 달라졌다. ‘초원사진관’ 중 ‘초원’ 두 글자가 오리지널이 아닌 말끔한 고딕으로 교체돼 있어 아쉽다. 아무리 디테일의 영역이라고는 하지만 저렇게 대놓고 다른데 모를 수가 있을까? 몇 년 전 기사 사진에만 해도 원본 그대로였던 것으로 보아 최근에 바뀐 듯싶다. 건물 왼쪽에는 극중 주차단속요원으로 나오는 다림(심은하 분)이 주로 타고 다닌 티코가 서 있다. 붉은 도색 위에 흰색으로 칠한 두꺼운 ‘주차질서’ 고딕은 영화 그대로다.


〈8월의 크리스마스〉 속 그곳, 초원사진관


디지털을 덧대지 않은 옛 글자들의 공간, 신영시장


해안가로 나가면 진포해양테마공원이 있다. 고려 말 최무선 장군이 왜구(여기도 일본이 등장한다)를 상대로 승리한 진포대첩을 기념하는 의미로 만들어진 진포해양공원은 한국군의 역사를 알리고 시민의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2008년 조성한 곳이다. 퇴역한 해군 상륙함과 각종 전차, 항공기 등이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최근 군산 내항 개발 계획과 맞물려, 군산의 근대성과 맞지 않아 철거해야 한다는 여론도 나오는 듯하다. 아예 ‘근대’라는 테마에 군용 장비까지 묶어서 조성하면 어떨까 싶었다.

공원의 또 다른 구경거리는 부잔교다. ‘뜬다리부두’라고도 하는 부잔교는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한 시설물로 밀물 때 수면 위로 떠오르고 썰물 때는 아래로 하강하는 선박 접안 시설이다. 부잔교(橋)인 만큼 이 부두와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가 핵심이다. 처음 봤을 때 기중기스러운 외형을 보고 다리 전체가 수평으로 떠오르는가 했는데 부두가 뜨면 다리도 뜨고 부두가 하강하면 다리도 내려가며 시소처럼 움직이는 원리라 한다. 방문했을 때는 물이 쫙 빠져 있어 생생한 작동을 볼 수는 없었다. 아무데서나 보기 힘든 신기한 시설이지만 이 다리를 통해 군산의 쌀이 일본으로 반출된 쓰린 역사도 함께 담고 있다. 1930년대 총 여섯 기가 만들어졌는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세 기다. 접안한 선박 뱃머리에는 붓글씨로 쓰인 경우가 반, 디지털 폰트로 쓰인 경우가 반이라 시대 변화를 느끼게 한다.

공원 외곽에는 미즈커피라는 이름이 붙은 카페가 있다. 묘하게 일본스러운 이름과 건축양식에서 근대를 느꼈는데 역시나. 일제강점기 무역회사였던 미즈상사라는 회사 사옥을 개조한 곳이라 한다. 1층은 여느 카페와 다를 것 없지만 2층은 다다미방으로 되어 색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다. 대신 내심 기대했던 근대역사박물관과 구 군산세관 건물은 장기 수리 중이라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진포해양테마공원에서 볼 수 있는 퇴역 군함


‘뜬다리부두’라고도 불리는 부잔교


게스트하우스 ‘여미랑’처럼, 적산가옥을 카페로 개조한 ‘미즈커피’

공원을 걷다가 다시 시내 쪽 신영동 상가골목으로 들어섰다. 신영시장 근처는 보존된 간판이 상당히 많았다. 아니, 많은 정도가 아니라 타 지역에 비해 오히려 디지털 폰트로 된 간판이 소수인 축에 속한다.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 훨씬 전부터 현역이었을 각종 옛날 간판이 곳곳에 산재해 있어 거리를 느끼기 전에 간판 글자들을 수집하느라 바빴다. 주류는 역시 네모틀에 꽉 찬 각진 고딕과 둥근 고딕. 사실 간판 글자 하나하나마다 엄청나게 새로운 디자인이 발견되지는 않는다. 소수일수록 개성이 있지 현역으로, 대량으로 쓰이는 글자들은 아무래도 획일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리 전체가 통째로 보존된 모습을 남기고 싶었다. 이렇게 영원할 것 같다가도 재개발 바람 한 번에 쓸려 사라질 수 있는 것이 거리 글자의 운명이다. 개복동에 위치한 국도극장도 언급하고 넘어갈 만하다. 씨네마우일 등과 함께 시내 주요 극장으로 기능해온 국도극장은 2000년대 중반 휴업 이후 사실상 폐업 상태다. 건물 정면에는 전성기의 위풍당당함을 완전히 잃지 않은 ‘國都(국도)’ 한자 명조 로고타입이 건재하지만 현실은 흔한 폐건물 중 하나에 불과하다.



신영시장에서 수집한 간판 글자들


국도극장


오랜 빵집 두 곳을 지나 동국사까지


군산의 유명한 빵집을 꼽으라면 두 군데가 주로 언급된다. 이성당과 영국빵집. 일본인이 하던 이즈모야 과자점을 인수하여 1945년 문을 연 이성당은 단일 브랜드로는 자타공인 한국 최고(最古) 빵집이다. 프랜차이즈와의 경쟁에서 밀려 고사하기 쉬운 보통 로컬 빵집과는 달리 단팥빵, 야채빵 등 핵심 품목을 앞세워 수도권에도 지점을 낸 대형 업체로 성장했다. 필자가 방문하는 그 순간까지도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누군가에겐 그야말로 군산 하면 이성당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본점 간판은 연식이 꽤 되어 보이는 명조체. 인터넷 웹사이트엔 좀 더 귀여운 고딕 로고타입이 있지만 근본은 역시 명조체라 할 수 있다. 계열로 따지자면 현재 주로 쓰이는 윤명조, 산돌명조네오보다 이전 SM, HY 계열에 가깝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이성당

조금 더 시내 깊숙히 들어가다 보면 오른쪽 길가에 있는 영국빵집은 이성당보다 연혁은 짧지만 무시할 수 없는 저력을 지닌 가게다. 1984년 개점 당시 ‘영국빵집’이라는 이름이 전국적으로 드물지 않아 평범하게 지었다는 상호. 뉴욕제과, 독일빵집 같은 종류라고 보면 쉽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전국 수십 개에 달하는 영국빵집들은 하나둘씩 문을 닫고 결국 군산의 영국빵집이 제일 유명한 곳으로 남았다. 이곳의 주요 메뉴는 군산에서 나는 흰쌀찰보리를 이용한 흰쌀찰보리빵. 수많은 실패 끝에 성공시켰으나 상생을 위해 레시피를 공개, 주변 지역 빵집에서 유사한 품목을 판매 중이라 한다.

영국빵집 로고타입의 둥글둥글한 맺음과 오른쪽을 터놓은 이응, 가로로 긴 글자폭, 식빵을 형상화한 ‘빵’의 초성이 정겹다. 부산 남포문고 로고타입처럼 어쩐지 이를 바탕으로 다른 문자열도 파생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또 한가지 눈에 띄는 시각 풍경은 창 밖에 붙여 놓은 각종 메시지다. 흰 대지에 핑크·오렌지·그린·블루 등 총천연색으로 써놓은 POP 글씨가 1990년대의 가게 풍경 그대로다. 지역 경기가 어렵지만 2대가 이어 운영 중이라 하니 지금으로선 그 뚝심이 꺾일 일은 없어 보인다.


군산 흰찬쌀보리빵의 원조 영국빵집


영국빵집 로고타입

월명산 자락 끄트머리에 있는 동국사(東國寺)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남은 일본식 사찰이다. 일본식 종교 시설이라는 것은 단순한 ‘일본식 가옥’과는 차원이 다른 의미를 지닌다. 원래 일본 불교 종파인 조동종(曹洞宗) 승려 우치다에 의해 금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된 이곳은 광복 후 동국사로 이름을 바꿔 오늘에 이른다. 전국에 있는 많은 유사 시설이 사라지는 잔재 청산 바람 속에서 용케 살아남은 모양이다.

시내에서 걸어 올라가기는 어렵지 않다.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정문 왼쪽 돌기둥에 있는 현판 글자로 이곳이 동국사 입구임을 알 수 있다. 굵은 획으로 쓴 전형적인 한국식 세로 나무 현판. ‘동국사’ 문자열이 복잡하지 않아 더욱 힘찬 인상을 주고, 오른쪽 돌기둥에는 원래 이름 ‘금강사’가 새겨져 있어 복잡한 내력을 알려준다.



대웅전은 홑처마 형식의 에도시대 양식. 사용된 목재는 일본산 쓰기목이며 범종도 일본에서 주조된 진짜 일본식 공간이다. 2012년 9월 창건의 주역인 일본 불교 조동종에서 동국사 경내에 일제강점기 일본 불교가 저지른 잘못을 사죄하는 참사문 비를 세웠다. 경내가 크진 않지만 면적으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역사의 무게 속에서 화창한 경내를 한동안 떠나기 어려웠다.


우리나라에 남은 유일한 일본식 사찰 동국사
(일제강점기 이 절을 세운 일본 조동종은 2012년 9월 동국사 경내에 참사문비를 세웠다)


‘서해부속’ 시트지 글자 해석파생


군산 영동 거리에 있는 인테리어 가게 ‘서해부속’ 창문에 붙은 시트지 글자는 폰트화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시트지 글자 하면 생각나기 쉬운 단순한 고딕이나 둥근 고딕을 탈피해, 사선으로 날카롭게 선 부리나 다이아몬드 형상 디테일 등의 충분한 개성을 갖고 있다. 그러면서도 옛 글자 특유의 고루한 느낌이 없다. 낱자 공간 바깥으로 툭툭 돌출된 획에서 손맛이 느껴지는 이 글자의 주요 DNA를 살펴보자.


‘서해부속’이라는 인테리어점


가게 창문의 시트지 글자

  ▶︎ 낱자를 구성하는 각 자소들이 평행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기울어져 있다. 즉, 낱자가 비스듬한 방향성을 갖고 있다. 전체적으로 우상향이다.
  ▶︎ 날카로운 부리와 뭉툭한 가로보를 동시에 지닌 명조와 고딕의 중간 성격을 갖고 있다.
  ▶︎ 글자폭은 상당히 좁은 편이다. 이중모음([텐], [렌])이 오는 낱자도 다른 낱자와 비슷한 글자폭을 갖고 있다.
  ▶︎ [커], [텐], [크] 등 기초 자소 [ㄱ], [ㄴ], [ㅁ], [ㅅ], [ㅇ]에서 가획이 이루어지는 자소에 다이아몬드형 포인트가 들어갔다. 
  ▶︎ 기역과 키읔, 지읒 등 왼쪽 면이 열려 있는 자소는 시작하는 획의 각도가 수평이 아니라 더 위쪽으로 열려 있다.
  ▶︎ 디귿과 리을은 보통 비슷한 디자인을 갖지만, 여기서는 디귿이 딱딱한, 리을은 필기체에 가까운 부드러운 모양으로 많이 다르다.
  ▶︎ 초성 지읒, 초성 미음에서 볼 수 있듯 낱자 바깥으로 돌출된 디테일이 특징이다. 이는 손글씨의 특성을 반영한 흔적이다.
  ▶︎ 가로보가 위쪽으로 살짝 볼록하게 휘어 있다.
  ▶︎ [텐], [레]를 보면 보통 [ㅓ], [ㅔ]처럼 곁줄기가 안으로 치고 들어오는 중성이 오면 초성·중성이 떨어지도록 디자인하기 쉬운데 여기서는 곁줄기가 있는데도 초성·중성이 연결되어 있다.
  ▶︎ 이중모음 [ㅔ]의 두 기둥 길이 차이가 심한 편이다.

DNA를 분석했다면 한글 파생 원리에 의해 다른 낱자도 만들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바닷바람에 실린 근현대의 향기 전라북도 군산’이라는 견본 문자열을 제작해 보았다. 견본에 없는 글자라도, 설명을 보면서 이유를 추측해 보거나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석·응용한다면 좋은 레터링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개성 있는 요소가 많아, 규칙을 부여하고 제한하기보다 웬만한 변별 요소는 살리는 쪽으로 파생했다. 항상 강조하지만 이것은 디자이너의 성향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제한적인 특정 요소만으로 파생할 수도 있고 모든 것을 살릴 수도 있다. 다 같은 악보와 시나리오로도 창작자에 따라 상당히 다른 결과물이 나오듯 글자도 비슷하다. 거기에 재해석의 묘미가 있다. 글자폭은 원본을 그대로 옮기면 800유닛(Unit) 정도지만 현행 폰트 대비 너무 좁은 감이 있어 900유니 고정폭에 맞춰 조정했다. 무게중심은 중앙으로 두고 초성의 크기를 살짝 더 키워 글줄에 안정감을 부여했다.


‘서해부속’ 시트지 글자를 바탕으로 제작한 견본 문자열

  ▶︎ ‘가로모임꼴 민글자: [자], [바], [에], [대]
  [자]는 [지]에서 따왔다. 세로 기둥을 왼쪽으로 밀고 [각]의 가로 곁줄기를 가져오되, 받침이 없음을 감안해서 곁줄기 두께를 약간 두껍게 했다. 다른 낱자에서도 받침이 있고 없고에 따라 너무 티나지 않는 선에서 약간의 차이를 두었다.

  [바]의 비읍은 없으므로 새로 만들어야 한다. 이럴 때 가장 참고하기 쉬운 것이 미음이다. 미음에서 하나로 이어지는 획을 두 개로 분절하는 느낌으로 비읍을 제작했다.

  [에]의 이응은 [종]에서 따오되, 정원에 가까운 디자인을 위아래로 길게 손질해서 [에]에 적용시켰다. 자소가 놓이는 위치에 따라 폭이나 길이는 달라질 수 있다.

  [대]의 디귿은 [텐]에서 가져왔다. 길이를 아래로 늘이되 [자], [바] 등과 너무 차이나지 않게 맞췄다.

  ▶︎ 가로모임꼴 민글자: [의], [기], [라]
  [의]의 세로 기둥은 기본적으로 [지]와 맞췄다. 초성 이응은 [종]에서 가져오되, 위에서 누르는 요소가 없고 자유로운 초성 특성상 [종]에 있던 이응보다 크기와 두께를 모두 키웠다. 이음보는 가로보와 달리 초성을 감싸는 모양으로 오목하게 제작했다. 두께는 가로보에 맞췄으며, 오목한 정도는 글자 전체에 담긴 리듬감을 살려 약간 과장해 보았다.

  [기]의 좌우 글자폭은 [지]에 맞추되 초성 기역은 [커]에서 가운데 획을 제거하는 선에서 그쳤다. 처음 시작하는 획이 나팔 모양으로 약간 벌어져 있는데, 이것을 제거해야 하는 불순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그대로 살렸다.

  [라]의 초성은 [레]에서 가져오되 위치를 오른쪽으로 옮기면서 좌우 폭도 오른쪽으로 넓혔다. [ㅏ]는 [ㅔ]보다 공간을 덜 차지해 초성에 주는 압박도 적기 때문이다.

  ▶︎ 세로모임꼴 받침글자: [글], [근], [북], [군]
  원본에 있는 것은 [스], [모], [크] 등 세로모임꼴 민글자뿐이다. [글]을 위해서 일단 [크]에서 가운데 가로줄기를 제거하여 [그]를 만든다. 그런 다음 받침 리을을 [라]에서 가져온다. 그러나 면적 문제로 그대로 쓸 수는 없다. 리을을 구성하는 가로획 세 개 중 위쪽 두 개까지는 그대로 쓰되, 맨 아래 획은 니은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계열상 비슷하므로 문제 될 것은 없다.

  [근]의 가로보는 [그]와 [글]의 중간 정도로 잡고 [텐]의 종성 니은을 가져오면 된다. 다만 위쪽과 양옆으로 키우는 조정이 필요하다. [테]가 누르고 있는 경우와는 달리 압박이 훨씬 적기 때문이다.

  ▶︎ 가로모임꼴 받침글자: [발], [견], [닷], [린], [람]
[발]의 [바] 부분은 낱자 [바]에서 출발해서 위쪽으로 줄여준다. 이때 비읍과 [ㅏ]의 간격을 약간 벌려야 한다. 받침이 왔을 때 간격이 그대로라면 [바]보다 [발]이 약간 좁아 보이기 때문이다. 비읍 가로획은 약간 줄어들어야 한다. 여기서는 5유닛 정도 조정하고 가파른 곡선도 약간 완만하게 만들었다. 

  [견]은 [기]에서 출발하여 [텐]에서 온 받침 니은을 추가하고 초성 기역을 위쪽으로 올리면서 사이즈도 약간 줄였다. [겨] 부분의 중성 곁줄기는 위쪽은 초성에 묻히고 아래쪽은 분리되도록 처리했는데, 많은 고딕에서 이런 디자인을 택하고 있다. 받침 니은은 [텐]에 있을 때보다 위로 커져야 한다. 초성 기역이 티읕보다 공간을 적게 차지하기 때문이다.

  [닷]의 초성 디귿은 [대]에서 가져오되, 중성 [ㅏ]가 [ㅐ]보다 공간을 적게 차지하는 만큼 오른쪽으로 키워 주는 동시에 받침이 들어갈 자리를 위해 위쪽으로 밀었다. 두께는 아직은 비슷하다. 받침 시옷은 원본에 없으므로 만들어야 하는데, [스]의 초성처럼 그대로 만들기보다 약간의 포인트를 주고자 [자]의 초성 지읒을 응용하여 획이 겹치면서 돌출되도록 만들었다. 허용되는 범위 안에서 과장하는 것은 재미를 줄 수 있다.

  [린]의 초성 리을은 [레]를 참고하되, 자소 디자인은 앞서 만들어 둔 [글]의 종성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레]에 있는 리을은 커브가 많아 받침글자에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하여 커브를 없애고 단순하게 만든 리을로 디자인했다. 중성·종성은 [견]을 바탕으로 하되 종성 니은을 약간 내렸다. 기역보다 리을이 공간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이다.

  [람]의 초성 리을은 [린]을 참고하되, 중성 [ㅣ]보다 [ㅏ]가 왼쪽으로 많이 치고 들어오므로 초성 전체를 왼쪽으로 줄였다. 그와 동시에 종성 미음이 니은보다 공간을 많이 차지하기에 초성을 [린]보다 위쪽으로 줄였다. 종성 미음은 [모]의 디자인을 참고하되, 종성에까지 디테일이 많으면 과해 보일 것 같아 튀어나온 획을 잘랐다. 이로써 초성과 종성의 자소 디자인을 다르게 간다는 규칙이 생겼다. 이 규칙은 적어도 되고 많아도 되지만 폰트 전체의 낱자에 걸쳐 일관되게 적용되어야 한다.

  ▶︎ 가로모임꼴 받침글자: [현], [향](초성 히읗)
  타 자소의 모양과 크기는 어느 정도 원칙이 세워졌지만 초성 히읗은 완전히 새롭다. 또 하나의 결정을 해야 하는데, 히읗의 꼭지를 눕힐 것인가 세울 것인가에 관한 문제다. 여기서는 똑바로 선 꼭지가 공간 활용과 강력한 인상에서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세웠다.

  더욱 전통적인 형태를 원한다면 눕힌 형태로 디자인할 수 있겠다. 그러나 꼭지를 눕히면 세웠을 때보다 공간을 더 많이 차지하므로 초성 히읗의 가로획들을 줄이면서 꼭지를 끼워 넣어야 한다. 히읗의 가로줄기는 이응을 감싸는 형태로 볼록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아래쪽(종성 니은, 리을 등)과 위쪽에서 낱자를 감싸는 듯한 리듬이 만들어졌다. 낱자가 온전한 인상을 주려면 한데 뭉쳐 보이는 응집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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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군산역과 공장을 오가며 주택가를 정통으로 관통하던 화물열차 선로를 2008년 7월 운행이 완전히 끊긴 후에도 철거하지 않고 관광지로 조성한 경암동 철길마을 탐방을 끝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철길마을을 탐방하고 싶다면 각종 가게로 잘 꾸며진 시작 지점보다 반대편 끝에서부터 걸어 들어가는 것을 추천한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콘텐츠와는 다른 오리지널 철길마을의 감성을 짧게나마 느낄 수 있다. 정말 가정집 바로 옆으로 선로가 지나간다. 철길을 걷는 동안에도 작은 평상에 누워 파리를 쫓으며 낮잠을 즐기는 할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경암동 철길마을

군산은 크지 않은 도시다. 주요 관광지도 몰려 있는 편이라 당일치기로도 큰 부담은 없는 여행지다. 그러나 조금 일정을 넉넉하게 잡고 돌아본다면 더 깊이 있는 탐방도 가능하다. 잠깐이나마 느껴본 군산 시가지는 오랜 역사의 흔적만큼 많은 가능성을 열어 주는 도시였다. 그것을 어떤 관점에서 어느 정도까지 느끼는가는 방문객의 몫이다.






글을 쓰고, 글씨를 쓰고, 글자를 설계하고 가르치는 등 글자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 관심이 있다. 산돌을 거쳐 ㈜티랩에서 근무 중이다. 월간 『디자인』, 계간 『디자인 평론』 등에 글을 기고했으며 서울시립청소년미디어센터, 온라인 플랫폼 클래스101, 이도타입에서 서체 디자인을 가르쳤다. 에세이집 『글자 속의 우주』를 출간했다. ● ●  @donghoonha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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