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사랑할 때, Plus X 신명섭2013.04.05

디자인을 사랑하는 사람. 딱 이 한 마디면 충분하지 않지 않을까. 혹은 이렇게 말해볼 수도 있겠다. 디자인의 부름에 열렬하게 응답한 사람. 만화를 좋아했던 평범했던 소년은 디자인이 뭔지도 모르고 대학에 갔다. 그림을 좋아한다는 것 외에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할지도 몰랐던 스무 살, 처음으로 디자인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체험했다. 그 후로 자신의 모든 것을 디자인에 걸었다. 미치도록 사랑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글. 인현진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만화였다던데
그걸 어떻게 아셨지?(웃음) 초중고 때 일관되게 공부를 못했어요(웃음). 고등학교 때 미술반 활동을 했지만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도 없고요. 고3때 진로에 대해 고민을 했는데 제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게 그림 그리는 것이었거든요. 형편상 힘들지만 딱 9개월만 미술학원을 보내달라고 어머니를 설득했죠. 디자인이 뭔지도 모르고 대학에 갔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매일 밤새서 과제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구나, 인정받을 수 있구나,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희열감을 느꼈죠. 

군대에 가서도 공모전 준비를 해서 응모를 하셨다면서요?
어라, 이건 또 어떻게 아셨어요? 진짜 친한 사람 아니면 모르는 얘긴데(웃음). 군대에 가서도 시간을 그냥 보내고 싶진 않았어요. 허락을 받아 컴퓨터도 갖고 와서 프로그램 공부도 하고 광고공모전도 준비했죠. 시간이 되는 한 디자인을 놓고 싶지 않았거든요. 부대 소식지나 로고도 제가 만들겠다고 자진해서 막 만들고(웃음). 원래 책도 안 읽던 애였는데 디자인관련 분야 책은 읽게 되더라고요. 그때 어떤 분야로 갈까 본격적으로 고민을 한 것 같아요.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으셨어요?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혼자 연습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연습이라고나 할까 취미처럼 하고 있어요. 인턴을 광고회사에서 했는데 거기에서 하는 작업들을 보니까 오히려 가고 싶은 회사가 뚜렷하게 생기더라고요. 거기가 안그라픽스였는데 지원을 해서 다행히도 다니게 되었고 편집디자이너로서 처음 시작을 하게 되었죠.

타이포그래피 하나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하게 작업을 해오셨죠?
변종이면 변종이죠(웃음). 타이포그래피가 좋아서 안그라픽스에 갔는데 너무 잘 하는 사람들만 있는 거예요. 진짜 미친 듯이 일했어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열심히 하는 선배들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웠죠. 그러다가 한 회사의 브랜드를 깊이 있게 파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디자인 회사의 스타일보다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가져가야 하는 색깔이 뭘까를 고민하는 게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 Plus X Brand Experience Design Project
Creative Director : 신명섭, 변사범
Designer : 이동우, 김지훈

▶ Hyundaicard the Red Package Design
Creative Director : 신명섭
Designer : 이동우, 김지훈

▶ Samsung Developers Brand Experience Design Project
Faciliator : 김경동
Creative Director : 신명섭, 변사범, 허승원
BX Designer : 윤지영, 이동우, 천준혁 
UI Designer : 한다경
Motion Designer : 박정건, 박천웅, 김철휘


그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협의를 이끌어내는 일에도 능숙하다. 일을 할 때도 자신의 생각에 사로잡혀 고집을 부리기보다 상대와 함께 공동의 목적을 이루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 편하게 안주하는 것은 그의 방식이 아니다.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된 남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며 헌신하듯,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기꺼이 하려고 한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뜨겁다.

안그라픽스 이후에 NHN에 가게 된 계기가 있나요?
편집디자이너들이 기업에 가는 것을 두고 좀 편하게 지내고 싶어서 간다는 이미지가 많았어요. 하지만 전 그런 건 아니었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었어요. 이직을 하면서 과거보다 부족한 작업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했죠. 3개월 만에 팀장이 되면서 이전까지 해보지 못한 일들을 경험했는데 어려우면서도 재미있었어요. 플렉서블한 문화가 살아 있었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게 좋았어요. 

역동을 일으키는 도전의식이 강하신 분이네요.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나요? 
사실 소심해요(웃음). 다만 경험을 중요하게 여겨요. 플러스 엑스를 시작하면서도 우리가 하는 방식으로 일하는 디자인회사는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니즈를 생각했죠. 이 일 자체를 좋아하고 다양하고 새로운 분야에 대한 호기심도 많아요. 새로운 일을 만나도 어려워하기보다 배우고 도전하면서 희열을 느끼죠. 

나무 하나보다 숲 전체를 보면서 일을 하시는 것 같아요.
단순히 브랜드 하나를 놓고 봐도 굉장히 많은 디자인 분야가 필요해요. 기업의 경영목표와  비즈니스적인 목적도 알아야 하고요. 전체 목표 속에서 디자인적인 가치를 생각하게 되죠. 편집디자인에서 출발했지만, 아니 출발은 만화였구나(웃음). 기업과 브랜드, 디자인의 가치를 고민하면서 시각과 청각 등 통합적 디자인을 짜는 전체 틀을 배웠고 유통과 제조업에 대한 일도 알게 되면서부터는 기업의 니즈를 생각하던 때와는 또 다른 시각이 생겼고요.

경영인과 디자이너로서의 입장을 병행하는 게 힘드실 것 같아요.
저도 사업을 하게 될 줄 몰랐어요(웃음). 혼자서는 못했을 것 같아요. 프로젝트를 계속 하고 직원들에게 그 보답을 해주면서도 회사의 가치를 올려야 하니까 경영에 대한 고민이 크죠. 1주일 동안 견적서를 조율하기만 할 때도 있어요. 작건 크건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모든 분들이 존경스러워요. 앞으로는 해외기업과 일하고 싶어요. 영어를 못하는 게 좀 걱정이지만(웃음). 


▶ YG Brand Experience Design Project
Faciliator : 김경동
Creative Director : 신명섭, 변사범, 허승원
Brand Experience Planner : 정의선
BX Designer : 이동우, 윤지영, 김지훈, 천준혁, 김혜림 
UX Planner : 박지혜
UI Designer : 박효진, 정은옥
Motion Designer : 박정건, 이정현

▶ Typeface Episode Poster (개인작업)


처음 봤을 땐 우주 생물체인가 했다. 알고 보니 부산 아쿠아리움의 해파리란다. 그의 시각 속에서 사물은 생물이 되고 생물은 사물로 재탄생한다. 평범한 일상에서 조형이나 그래픽 요소를 찾아내어 즐기기란 디자인을 정말 좋아하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일이다. 디자인이 소중한 만큼 그는 디자인의 가치에 대한 고민도 잊지 않는다. ‘단가’만 생각하는 클라이언트들의 태도에도 의문을 품는다. 그에게 디자인은 단순히 돈을 받고 원하는 것을 주는 상품적 거래가 아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사랑, 그 자체다. 

디자인이 왜 그렇게 좋으세요?
어려운 질문인데(웃음). 제 존재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고. 자아를 처음 느낀 분야였기도 했지만 사물을 조형이나 디자인적으로 표현하는 게 너무 즐겁고 재미있어요. 전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지 잘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실제로 세상엔 잘하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디자인은 뭘 이뤘다는 개념이 없으니까 그냥 계속 하는 거죠(웃음). 취미와 직업이 같으니 주변에서 워커홀릭이라고 해요(웃음).

흔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한 분야를 10년 하면 자기 세계관 같은 게 생기잖아요. 이 분야가 전망이 있어, 이런 것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서 하는 것이 좋다고 봐요. 저 자신을 봐도 디자인을 안 했으면 제가 뭘 하고 있을지 상상도 안 되거든요(웃음). 언젠가 회의를 하는데 일류대를 나온 사람들과 동등하게 일하는 저를 발견했어요. 고등학교 때 성적으로 생각해보면 있을 수 없는 일인 거죠(웃음). 자기 분야에서 당당하게 전문가가 되는 게 중요해요. 

일을 할 때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세요?
후배들 만나면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너 이 일을 진짜 좋아하냐, 어쩔 수 없이 하냐? 정말 좋아하면 어중간하게 하지 말고 미친 듯 몰입해보라고요. 며칠씩 밤도 새고, 힘들어서 눈물도 흘려보고. 극한까지 가봐야 실패를 해도 배우는 게 있거든요. 고통에서 성장이 나오는 거죠. 수영을 할 때도 10미터 바닥을 찍어야 10미터도 알지 5미터만 가면 그것밖에 모르잖아요. 저도 방향을 바꾸면서 살아온 사람인데 잘 해보려고 끝까지 가지 않았다면 과연 뭘 할 수 있었을까, 싶어요. 

젊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젊었을 땐 경험하고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부모님이 뿌듯해하고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직장에 취직하기보다 정말 자신이 행복한 일을 찾아서 하면 반드시 빛을 보게 된다고 믿어요. 연봉, 출퇴근 시간 등만 따져서 들어간 안정적인 직장도 나쁘진 않지만 너무 안정적으로만 살려고 하진 마세요(웃음). 정말 이 일을 좋아해서 전문적인 스페셜리스트가 되길 원한다면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곳에 가서 3년만 자신의 뼈를 묻어보세요. 커리어의 바닥을 다진 후엔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해도 괜찮습니다.

  

▶ Photo+Typography Work (개인작업)

▶ 한국타이포그라피학회 독설전 포스터 (개인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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