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라이프, 그래픽 디자이너 신덕호2014.02.10

스물아홉. 아직 서른이 채 되지 않은 한 젊은 디자이너의 행보가 예사롭지 않다. 타이포그래피를 근간으로 한 탄탄한 작업물을 보여주고 있기에 더욱 눈길을 끈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담백함은 청춘의 그늘을 빗겨갈 정도로 빛이 난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기보다 자신의 프로세스를 밟으며 착실하게 실력을 키워가고 있는 그의 작업실 앞에는 자신의 두 다리를 움직여야 굴러가는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글.인현진

 

 


작업실 앞에 자전거가 보이던데요.

좋아해요. 작업실도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구했거든요. 자전거를 타는 이유는 우선 재밌어서고, 서울에서 차를 끌고 다니는 건 합리적이지 않은 것 같고요. 또 오브제 자체가 예쁘잖아요. 아마 디자이너들이 좋아하는 자전거 유형이 있을 거예요. 원형, 다이아몬드 프레임에 구조적으로도 심플하고요. 딱 부러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건축의 경우엔 구조 자체가 지형과 적합하게 어우러져 있을 때 아름답다고 느껴요. 심플하지만 좋은 소재로 만들어진 것에 마음이 가고요.

 

미적 취향에서 정직하고 순박한 본인의 성품이 드러나는 것 같아요.

촌스러움일 수도 있어요. 뭐라고 해야 하지…. 주변 사람들을 보면 굉장히 세련된 분이 있어요. 어떤 친구들을 보면 외형이 멋진데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가능하겠다, 하는 사람이 있고 저 친구는 작정하고 따라 해도 저런 취향을 갖기는 힘들겠다,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선천적인 환경도 중요한 것 같고요. 저는 후자의 경우는 아닌 것 같아요(웃음).

 

평소 생활은 어떻게 하시나요?

굉장히 규칙적으로 살아요. 8시에는 일어나서 9시~10시까지 작업실 출근하고 점심땐 집에 가서 밥을 해먹고 다시 와서 7~8시까지 일하고 집에 가서 다시 저녁 해먹고(웃음). 작년부터 가치관이 좀 바뀐 것 같아요. 우선 이 동네는 먹을 데가 없어요. 그리고 내가 먹을 밥 정도는 해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재작년까지 작업실에서 친구들과 같이 공동생활을 했어요. 일도 많이 하고 술도 많이 먹고 진짜 재미있었는데 자기 생활이 없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거기 생활을 졸업하게 된 것도 독립적인 생활에 대한 갈망이 있어서예요. 작업실은 같이 공유하고 생활은 독립적으로 하는 지금 생활이 좋아요.

 

최근 근황을 좀 말씀해주세요.

최근 바리스타라는 커피를 콜라보레이션 했어요. 사실 제가 한 건 많이 없지만(웃음). 구조가 재미있어요. 스티커를 떼면 평면인데 기술공정에 따라 압착이 되면서 곡면이 되는 것이거든요. 바리스타를 한글로 집자 하면 위칫값에 따라 이런 모양이 나오죠. 구조 스스로가 만든 타이포그래피라는 점에서 재미있더라고요. 지금은 LIG문화재단의 RESIDENCE–L 도록 작업과 차혜림 작가 개인전을 책으로 엮는 일을 하고 있어요.(홈페이지)


▶bicycle print_design Shin Dokho



graphic_design shin, dokho+woo, taehee


 jazz times



김일두 x 하헌진 [34:03]



그는 콘셉트와 개념을 뽑아내는 초기 작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자료를 꼼꼼히 보면서 개념어나 키워드를 잡고 거기에서 나온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과정을 발전시킨다. 일의 맥락에서 먼저 스크립트를 본 후 작업에서 중요하다고 느낀 것이나 시각적 특징을 한두 가지 잡은 후 이 텍스트가 시각언어로 바뀐다면 어떤 형태를 띨까? 라는 의문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그만큼 시행착오도 적은 편이다.

 

보이지 않는 맥락을 시각화한다는 게 참 신기한 것 같아요. 그것이 또 타인과 소통이 된다는 것도 그렇고요. 

제 작업만 봐도 쉽게 파악이 되는 게 있고 레이어가 많다든가 숨겨진 게 많아서 알기 힘든 것도 있어요. 파주통신 같은 경우는 한눈에 보기에도 알기 쉽잖아요. 말로 풀어 설명했을 때 조형이 갖고 있는 힘마저도 무너질 정도로 모티프가 확실히 보인다면, 굳이 말로 설명하진 않아요. 모티프가 잘 드러나거나 표현적일수록 쉬운 것 같아요. 프린지의 경우 프린지 자체가 모퉁이, 구석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고, 홍대에서 쫓겨나는 예술가들이라는 주제에 맞춰 인물들을 구석으로 몰아서 프레임을 짰어요.

 

콘텐츠에서 본질을 뽑아내고 그것을 구현하는 방식은 어떤지 궁금해요.

어떤 과제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대부분은 설정이 정해지는 것 같아요. 의뢰를 받으면 그것에 관련된 텍스트들을 꼼꼼히 살펴봐요. 분명히 집중해야 하는 곳이 있거든요. 중심 키워드를 뽑으면 그것의 사전적인 정의나 맥락적인 부분을 다양하게 살펴봐요. 그렇게 살펴보고 따져보는 과정에서 콘셉트가 나오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했던 일 중 아이디어를 내기 가장 힘들었던 작업이 있다면요?

작업 아이디어 때문에 힘든 적은 없었던 것 같고 실제 진행할 때 담당자가 힘들었던 경우는 많죠(웃음). 어떤 일이 처음 들어오면 제가 잘 모를 가능성이 많아요. 영화나 미술도 제 전공이 아니니까 콘텐츠 파악하려고 공부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때가 많았고요. 그냥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혼자 일 하는 디자이너가 홍보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 이번 일 할 때 열심히 해서 다음 일로 연결되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일하면서 뭐가 제일 재미있어요?

진짜 별생각 없어요(웃음). 디자인하길 잘했다, 이런 생각을 특별히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작업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워서 계속 하는 것 같아요. 영국에 스핀이라는 회사가 있는데 참 멋있어요. 상업적인 일도 비상업적인 일도 올라운드로 잘하거든요. 지금은 혼자 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언젠가 스핀 같은 회사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친구들하고도 10년만 자기 일 하다가 모여서 같이 하자, 이런 이야기를 하고요. 학생 때는 자기 영역이 불분명했는데 지금은 자기 전문분야가 생기니까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것도 같아요.




다시-쓰기

 바리스타 라떼프레소



부산국제영화제 리뷰데일리



소라게 살이



앞이 훤히 보이는 창 넓은 작업실에서 언덕을 하나 넘어,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점심밥을 손수 지어먹고 다시 작업실로 온다. 먹고 자는 것을 규칙적으로 심플하게 정돈해서 작업뿐만 아니라 먹고 자고 쉬는 일상의 삶도 챙길 줄 안다. 자기에게 홀대하지 말고 잘하자는 생각을 마음에 두고 있다. 올해 스물아홉. 짧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눈부신 행보를 보이고 있는 건 이런 탄탄한 균형감각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많이 들었을 질문일 테지만 타이포그래피를 기반으로 작업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특별한 계기는 없고요, 책 읽는 거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흥미를 느끼게 된 것 같아요. 특히 소설을 많이 봐요. 박민규, 김연수 작가 좋아하고요. 아버지가 2007년까지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계속 모으셨는데, 그 이후로는 제가 사고 있어요. 다양한 작가의 작품을 읽을 수 있어서 연초에 나오는 이상문학상 작품집이 가뭄에 단비 같은 존재죠. 계간지 문학동네에 좋아하는 작가의 리뷰가 실리면 챙겨보고요. 소설을 많이 보는 편이에요.

 

소설에서 영감을 받기도 하시나요?

소설 자체에서 영감을 받기보다는 형식을 빌려온 경우는 있었어요. 알랭 르보그리예의 <질투>를 보면 이야기 자체가 파편화되어 있잖아요. 처음 보면 이게 뭐야, 이랬는데 계속 읽으니까 이 소설 미친 거 아냐? 이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내를 계속 의심하는 남편의 관찰자 시선을 계속 보여주는데 이 소설은 이 태도 하나를 보여주려고 이렇게 만들었구나, 라는 걸 깨달은 순간 받았던 쾌감이 있거든요. 그런 것에 영향을 받아요. 한 가지 키워드가 나오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것을 일관되게 밀어붙이는 작업 스타일이라 그런지 모르겠어요.

 

현재 관심 있는 주제나 흥미를 갖고 계신 것이 있나요?

평생 탐구할 수 있는 주제를 갖고 싶다는 생각은 매번 하는데, 지금도 찾고 있는 중이에요. 가장 관심 있는 건 개념에 근거한 타이포그래피와 내용에 알맞은 구조를 다양한 매체로 구축하는 거예요. 또, 그와 별개로 인쇄하면 모니터로 작업한 것과 실제 물성의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이 차이를 어떻게 줄일 것인가(모든 인쇄디자이너라면 관심이 있겠지만)에 대한 고민이 있고, 반대로 어차피 차이가 발생한다면 이것의 위계를 역전시킬 방법은 뭘까, 이런 것에 관심이 있어요. 전체적으로는 '역逆'에 관심이 있네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면요?

보통 요즘의 디자이너들은 책을 만들 때 모니터에서 표현되는 값을 실제 물성으로 재현하려고 하잖아요. 직접 활자를 조판하고 인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책을 디자인하게 되는데요. 그럼 모니터에서 재현이 안 되는 방식을 찾아보자, 하다가 무늬목 시트지를 책 커버로 썼던 적이 있어요. 그 형태나 질감은 컴퓨터로는 표현할 수 없잖아요. 그 책의 콘셉트를 나무토막처럼 보이게 했으면 좋겠다로 잡았거든요. 작가가 무늬목 시트지로 드로잉을 하는 분이라 그것을 재료로 쓴 거예요. 1쇄는 최대한 책 제목도 안 보이게 하려고 압을 넣어 찍기만 했어요. 1쇄는 나무토막을 따라 하는 게 콘셉트였다면 2쇄는 1쇄를 따라 하는 게 콘셉트였어요. 일관되게 따라 하는 게 목적이기도 했거든요. 일관성을 갖지만, 변형을 주려고 했죠.

 

일이던 생활이든 살면서 중요하게 여기는 게 있으신가요?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생활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이것 또한 막연한 희망 사항이긴 하지만, 더 오래 일했을 때, 그래, 다 그런 거지, 이러면서도 또 알면서 속을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한계를 알더라도 한계는 없을 거야, 라고 믿는 순수함을 오래 갖고 싶어요.




유익점



코끼리의 날개



파주통신



포이동의 지역적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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