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만나다



'낯설게 들여다보기' 일상 속 타이포그래피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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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창작의 한 기법 가운데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라는 것이 있습니다.
러시아의 문학평론가 빅토르 시클롭스키가 처음 사용한 용어라고 하는데요.
이후  미하일 바흐찐 같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주창하면서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 우리의 일상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낯설어질 수 있답니다. 
그저 무심코 사용해왔던 사물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쳐왔던 건물과 조형물 들이
어느 순간 멋진 타이포그래피로 보일 수 있는 것이죠. 여러분은 혹시 그런 경험을 해보셨나요? :-) 

대부분의 사람들은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하루를 살아갑니다.
그저 무미건조하게 일상의 사물들을 대하죠. 사물은 사물일 뿐,
어떤 특별한 감흥을 받는 경우는 드뭅니다. 사물을 느끼거나,
그것과 내면의 대화를 할 여유가 없는 것이 바로 현대인의 일상 아닐까요?

그래서
오늘은 우리 일상을 낯설고 새롭게 보이도록 만들어줄 
타이포그래피의 재발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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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오브젝티파이드(Objectified)> 포스터
 
우리가 실제로 접할 수 있는 모든 구체적인 형태와 부피를 가진 것들을 '사물'이라고 합니다. 
예술 분야에서는 '오브제'라고도 부르죠. 다큐멘터리 영화 <오브젝티파이드>는 바로 우리 주변의
사물을 디자인하고 생산해내는 사람들과 시스템을 고찰한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2009년 서울 미로스페이스에서 열린 ‘디자인영화제’ 상영작이기도 했는데요.
제품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시점과 철학으로 당시 국내 관객들의 각광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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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갖가지 사물들로 표현한 <Objectified> 제목 타입
 
위 이미지는 <오브젝티파이드>의 영문 제목 타입입니다. 
일상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물건들을 알파벳처럼 나타낸 것이죠.
우리 주변의 그 어떠한 사물들도 글자로 읽힐 수 있다는 걸 증명해주는 셈입니다.

이런 신기한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사물들의 새로운 면을 재발견하게 되는 것이죠.
또한 틀에 박힌 일상에서 상상의 즐거움을 맛볼 수도 있죠. 

'oBJecTified' 타이포를 이루고 있는 위의 물체들은 볼수록 신기합니다.
아이팟의 조그셔틀은 둥근 모양 그대로 o, 선글라스와 칫솔은 놓인 방향에 따라
각각 B와 J가 되었습니다.
클립은 한쪽 끝을 조금만 펴니 e가 되었네요.
그 밖에 파이프, 백열등, 의자 등도 제각각 모양에 맞는 알파벳으로 변신했습니다. 


앞서 언급했던 '낯설게 하기' 기법은 문자 그대로 이미 익숙해진 사물을
이상하고 낯선 시각으로 바라봄을 의미하는데요.
<오브젝티파이드>의 경우처럼, 일상의 사물을 새로운 관점으로 재발견하는 것이죠.
틀에 박힌 일상에 익숙해지지 말 것을 경고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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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미지 맨 왼쪽에는 왠지 익숙한 사물이 하나 보입니다. 욕조 물에 띄우는 장난감 '오리'로 보이는데요.
한글 디자인적인 관점으로 한 번 더 바라보겠습니다. 한글을 염두에 두고 다시 보니, 한글 자음 'ㄴ' 같네요.
그것도 삐침 획이 있는 명조체의 'ㄴ' 모양 말입니다.

두 번째 사물 역시, 우리가 너트라고 부르는 '나사'인데, 다시 바라보니 자음 'ㅇ'이네요.
누군가는 'ㅁ'으로 읽힌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집게'는 'ㅗ', '열쇠'는 길쭉하게 생긴 'ㅜ'로도 보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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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und Alphabet' by Jen Quinn
 
위 사진은 디자이너 젠 퀸(Jen Quinn)이 일상에서 발견한 알파벳 모양 사물들입니다. 
우리 일상 속에도 한글을 숨겨둔 사물들은 찾아보면 끝이 없을 거예요. 

굴러가는 자동차 바퀴도 'ㅇ'으로 보일 테고, 자전거 손잡이는 느닷없이 'ㅅ'으로 보이고, 
지하철 손잡이는 어느새 'ㅎ'이 되고, 택배 회사 직원들이 운반하는 박스들은 'ㅁ' 으로 다가오고. 
이렇게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삭막하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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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ype the Sky' by Lisa Reinermann
 
건물이 빼곡한 도시. 답답한 건물들 사이로 하늘을 한번 올려다볼까요? 
하늘과 건물 사이의 공간이 만들어내는 알파벳이 보입니다. 

디자이너 리사 리너만(Lisa Reinermann)은 일상 속 타이포의 재발견을 
이렇게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했습니다. 또한 한 단계 더 나아가 공간의 재발견까지 이룬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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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lldog Clip Typeface' by Dave Wood

위트 넘치는 타입페이스 작품입니다. 클립의 각도에 따라 표현될 수 있는 알파벳 글꼴들이죠.   
이것 또한 책상 앞에 놓인 클립을 본래의 용도가 아닌, 다른 각도로 바라보고 재발견해 얻은 결과일 거예요. 
이렇게 놓고 보니 'A', 저렇게 놓고 보니 'b' 등등. 창조적인 발견은 대단한 것이 아니고 일상에 아주 근접해 있습니다.

일상에 지친 자신을 일으켜줄 활력소가 간절하다면, 가만히만 있지 말고 주위를 한번 둘러보세요. 
그리고 주변 사물들을 재발견해보는 것입니다. 색다른 느낌이 들지 않을까요?

그냥 길을 걷다가도, 보도 블럭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한글 자모음을 찾아낼 수도 있어요. 
그렇게 쫓아가다 보면, 마치 동화 속 앨리스처럼 원더랜드에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사물을 낯설게 볼 마음의 준비와 열정이 있다면, 새로운 즐거움은 도처에 가득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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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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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담아갈게요~
    2012.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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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오브젝티파이드>에서 애플의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아요. "어떤 물건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들이 순식간에 떠오른다. 이게 뭘까, 어떻게 작동할까, 가격은 얼마쯤이 적당할까… 물건은 그것을 고안한, 개발한, 생산한 사람들을 증명한다." 하나의 사물을 보면서 수십 수백 가지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바로 디자이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2012.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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